국회의원의 징계안을 심사하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정쟁의 장’으로 전락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막말’을 이유로 각 당 대표를 서로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그러나 실제로 윤리특위에서 징계안이 가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제21대 국회에서는 거액의 가상자산(코인) 보유 및 투자 의혹을 받고 있는 김남국 무소속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포함해 총 42건이 발의됐지만 모두 계류 중이다.
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를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김 대표는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자 ‘마약에 도취됐다’는 발언을 했는데 이것이 국회의원의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응해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쿠데타’ 발언을 한 윤영찬 민주당 의원을 같은 날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앞서 윤 의원은 SBS라디오에 출연해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총장을 지낼 당시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사실상의 쿠데타를 통해 결국에는 대통령이 된 것”이라고 발언한 것을 문제로 삼았다.
국민의힘은 또 연이어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이 대표가 지난달 국민의힘이 간담회에 초청한 웨이드 엘리슨 옥스퍼드대학교 명예교수에 대해 ‘돌팔이’라고 발언했는데, 이것이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주장이다. 이외에도 같은 날 “똥을 먹을지언정 후쿠시마 오염수를 먹을 수 없다”는 발언을 한 임종성 민주당 의원과 본회의 도중 일본 홋카이도 여행 문자를 주고받은 김영주 국회부의장도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양당 대표를 포함해 이틀 동안 제출된 5건의 징계안들은 모두 ‘국회의원 품위유지 위반’을 이유로 제출됐다.
문제는 양당이 경쟁적으로 의원들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해도 실제로 징계가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윤리특위 제소에 대해 “보여주기식”이라며 “윤리특위에 제소되더라도 국회의원 징계안이 통과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실제로 35년 동안 윤리특위에서 가결된 국회의원 징계안은 4.3%, 이 중 본회의에서 가결된 징계안은 단 한 건에 불과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제13대 국회부터 21대 국회 현재까지 접수된 징계안은 총 280건이지만, 이 중 윤리특위에서 가결된 징계안은 12건이었다. 같은 기간 본회의를 통과한 징계안은 한 건이었다.
이 중 유일하게 본회의에서 가결된 징계안은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한다’는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이 된 강용석 전 의원 징계안이다. 윤리특위는 지난 2011년 강 의원에 대한 제명을 의결했지만 본회의에서는 출석 정지 30일로 가결됐다.
전문가들은 윤리특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로 이해당사자인 의원들이 ‘셀프 징계’를 하는 것을 지목한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해 당사자인 국회의원들이 다른 의원들을 징계하기 때문에 윤리특위가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윤리특위 조직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윤리특위가 일을 안 하는 것은 특별위원회라 그렇다”며 “상설위원회로 바꿔 다른 상임위원회들처럼 정기적으로 심사를 열면 이미 쌓인 안건이 많아 정기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준 교수는 “윤리심판원 같은 조직을 별도로 국회의장 산하에 둬야 한다”며 “현재는 윤리심사자문위원회에서 징계안이 통과된 후, 윤리특위를 거치는 2단계로 되어있다. 이걸 의장 직속으로 두고 해당 조직은 외부 인사가 과반수를 차지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의원 징계안이 윤리심판원을 통과한 후 국회 본회의에서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게끔 하는 조항을 만들어 두면 의원들이 언행 등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