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아프리카에 있는 에리트레아와 함께 지금까지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지 않은 전 세계 두 나라 중 한 곳이다. 국제사회의 무상 지원도 거부하고 있다. 배경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나왔지만, 12일 정확한 이유가 밝혀졌다. 코로나 백신 접종 후 부작용이 나타나더라도 제약사는 책임지지 않는 ‘면책조항’에 북한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12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코로나 확진자 발생과 관련해 열린 노동당 제8기 제8차 정치국 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을 공개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회의 발언 때 마스크를 벗어 책상에 내려놨다. 김 위원장이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12일 북한에 첫 번째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상황과 관련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백신 지원 질의에 “(북한은) 우리 쪽(한국)에서 백신을 제공하는 것은 거부했지만, 코백스(COVAX·국제 백신공급 프로젝트)와는 계속 접촉이 있었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흥미로운 것이, 북한도 중국제 시노백과 (영국이 개발한) 아스트라제네카(백신)는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 제약사인) 모더나나 화이자(백신)를 원한다”고 전했다. 그런데 모더나와 화이자 백신은 메신저리보핵산(mRNA) 방식의 백신이어서 영하 20~70도의 콜드체인(저온 유통)이 필수다. 북한에는 이 시설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권 후보자는 코백스 측이 북한에 콜드체인과 관련한 문의를 했더니, 북한 측은 “걱정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코백스의 대북 백신 지원이) 안 된 이유가, 부작용이 생겼을 때 ‘면책 조항’에 대해 서명해야 하는데 그쪽(북한)에서 거부하는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백신은 다른 백신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개발됐다. 화이자와 모더나 등 제약사들은 각국 정부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특수한 상황임을 고려해 부작용 발생 책임을 면제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북한은 이에 동의하지 않아 백신을 지원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2022학년 새 학기가 시작됐다고 2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북한은 코로나19 사태 후 처음으로 '4월 1일' 정시 개학했다. /조선중앙통신 홈페이지 캡처

권 후보자는 북한에 코로나 백신 외에 다양한 의료물품을 지원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보도를 보니 (확진자가 감염된 코로나 바이러스 종류가) 오미크론 변이도 스텔스 오미크론으로 전파력이 훨씬 큰 것이고, 모내기철이라 단체가 모이는 상황이나 확산이 더 크게 될 우려가 있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 우리 쪽이 전적으로 도울 생각을 하고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백신도 백신이지만, 당장 환자가 생겼을 경우 해열제부터 시작해서 진통제, 소독약, 살균제도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오미크론에 대응할 부분에 대해 우리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북한의 인도적 위기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방역·의료 물품 대북지원에 대해 권 후보자는 “콜드체인 이외의 보건위생 관련 (물품)은 대북제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며 “만에 하나 백신 보관을 위해 필요한 물품이 제재 대상이라면 면제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북지원에 필요한 예산에 대해서는 “남북협력기금 등으로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 통일부 예산이 2300억원 정도 되지만 남북협력기금이 1조2700억원 정도 된다”며 “예산도 현재 1000억원 정도 편성됐다고 한다”고 전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 백신 공급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는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등 제약사가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후 세계 각국에 무상으로 지원할 코로나 백신 물량을 배정하고 있다. 북한에 대해서도 계속 물량이 배정되고 있지만, 북한은 지금껏 한 차례도 받지 않았다.

북한은 올해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128만8800회분과 노바백스의 백신 ‘코보백스’ 25만2000회분을 배정받았다. 하지만 수용 의사를 밝히지 않아 4월 초 배정물량이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지난달 12일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의 ‘코로나19 백신 마켓 대시보드’에 따르면 북한에는 백신 182만8800회분이 배정됐다. 백신 종류는 공개되지 않았다. 공급자가 준비를 완료했거나 이송 중인 물량은 아직 없는 것으로 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