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국무총리는 8일 “선거에서 진 쪽이 ‘무조건 안 된다’ ‘우리가 있는 동안은 안 된다’며 (정부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김부겸 국무총리(가운데)가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추진 중인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위한 예비비를 의결하기 위해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총리는 이날 EBS 초대석에 출연해 한국 정치의 향후 과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21대 국회와 20대 대통령 임기 내에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정치인들이 함께 고민해야 한다. 거기에는 개헌도 포함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왜 항상 다투기만 해야 하나. 승자독식 구조로 언제까지 갈 건가”라며 “우리 내부에 서로 공존하는 틀, 공존하는 정치가 자리를 잡아야 남북관계도 풀고, 외교적으로도 통일된 대응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느 한쪽 목소리만 나오고, 그 뒤에서는 딴죽만 거는 식은 안 된다”라고도 했다.

김 총리는 ‘정치에 회한이 들었던 때는 언제인지’를 묻자 2020년 21대 총선에서 낙선했을 때를 꼽고 “정치를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제가 떨어지는 선거를 할 때, 대구에서 코로나가 막 확산될 때”라며 “1조원 가까운 예산을 우리가 대구·경북 지역에 도와줄 수 있었다. 사실상 그 부분은 지역 언론도 (홍보를) 열심히 해주었는데 그 부분에 대한 평가를 (대구시민들이) 안 해주시더라”고 아쉬워했다.

이어 “조국 교수 사태 때 왜 조 교수 편만 들었나, 왜 날카롭게 비판하지 않았나”라는 비판도 있었다며 “보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제가 설득해서 표를 주실 부분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김 총리는 21대 총선에서 주호영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에 밀려 대구 수성갑에서 낙선했다. 김 총리는 지난해 5월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조국 사태’에 대해 “조 전 장관에 대한 기대 수준이 있었고 여러 가지 것들이 기대에 못 미쳤다”며 “국민들과 특히 젊은층에 여러 상처를 준 것은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정치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선거로는 2016년 20대 총선을 꼽았다. 김 총리는 “대구시민들이 보기에 조금 신선해 보였던 것 같다”면서 “그때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니 상대적으로 1~2석 정도 야당에 줘도 된다는 (인식도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2016년 4월 14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당선인(대구 수성갑)이 대구 수성구 범어네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 /조선DB

김 총리는 2012년 민주당 소속으로 대구 수성갑에 첫 도전해 40.42%의 지지를 받고 낙선한 뒤 2014년 대구시장, 2016년 재도전 끝에 대구시 수성갑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큰 표 차로 꺾고 당선됐다.

김 총리는 자신의 정치 인생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제정구 전 의원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뽑았다. 그는 “그분들의 철학과 이상은 온 몸을 던지는 것”이라며 “그래서 대중들이 알아주면 기회를 잡고, 정치를 해나가는 것이지만 (대중들이)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다 하면 관두는 것이다. 그런 정치관을 가르쳐주셨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들의 정치 철학 영향으로 고향인 대구에서 출마를 결심할 수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총리 퇴임 후 계획을 묻는 말에는 “30년 이상 정치를 하면서 국민에게서 사랑과 격려를 많이 받았지만, 제 삶 자체를 곰곰이 되돌아볼 시간이 부족했다. 저를 좀 돌아보려 한다”며 “그러나 사랑을 받은 만큼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시설에서 독립하는 청소년들에게 조언하면서 일종의 바람막이 역할을 해줄 멘토가 필요한데 시스템이 부족한 것 같다”며 “이미 비슷한 일을 하는 분들이 제법 있다. 제가 ‘마당발’이라고 소문이 났는데 그것을 사회적인 네트워크로 연결하면 지금보다 더 활발한 교류가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