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90세. 그는 군사 반란으로 집권해 제11, 12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냈다. 군사 독재의 상징이자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등을 통해 대한민국 현대사에 짙은 그림자를 남겼다. 최근에도 그를 둘러싼 정치적, 법적 이슈는 끊이지 않고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지병을 앓아온 전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45분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사진은 올해 8월 9일 광주에서 열린 항소심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연희동 자택을 나서는 전 전 대통령. /연합뉴스

◇대선 후보 되자마자 광주 찾아 고개숙인 윤석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경선 과정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옹호 발언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전두환 전 대통령처럼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겠다고 공개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그는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인 11월 10일 광주 5.18민주묘지를 방문해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그는 이날 5·18 민주묘지 추모탑에 헌화·분향하려 했으나, 반대하는 시민들에 가로막혀 추모탑 입구에서 묵념으로 참배를 대신하고 사과문을 낭독했다. 이날 5·18 민주항쟁의 일원으로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故) 홍남순 변호사의 유족 및 종친은 윤 후보의 사과와 방문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른바 ‘쥴리 벽화’ 논란이 일었던 서울 종로구 관철동의 한 중고서점 외벽에 국민의힘 윤 후보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벽화가 또 등장했다. 여기에는 무속 논란을 일으켰던 손바닥 ‘王(왕)’자, 사과 희화화 논란이 일었던 ‘개 사과’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특히 노란색 바탕의 벽화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 보이는 남성의 그림과 윤 후보의 장모로 추정되는 중년 여성이 그려져 있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운데)가 지난 10일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를 방문해 자신의 '전두환 옹호'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윤 후보는 이날 5·18 민주묘지 추모탑에 헌화·분향하려 했으나 반대하는 시민들에 가로막혀 추모탑 입구에서 묵념으로 참배를 대신했다. /연합뉴스

◇대선 후보들 전두환 비석 ‘밟느냐 마느냐’

윤 후보의 전두환 옹호 발언 이후 광주 민족민주열사묘역(5·18구묘역·망월묘역)을 찾는 대선 주자들의 ‘전두환 비석 밟기’도 이어졌다. 이 행위는 그 자체로 역사인식의 차이를 드러낸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 17일 광주 방문 첫 일정으로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그는 제2묘역,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을 차례로 찾아 무명열사와 5·18유공자 묘역에서 오월영령의 넋을 기렸다.

김 전 부총리는 구묘역으로 이동해 입구에 있는 전두환 비석을 여러 차례 발로 밟으며 “역사의 심판을 받아아죠”라고 말했다.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달 22일 광주를 방문해 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이 후보는 5·18민주묘지 참배 후 무명열사 묘와 행방불명자 묘를 차례로 찾았다. 이 후보는 “전두환씨는 내란범죄 수괴이자 집단학살범”이라며 “’전두환’이란 이름을 쓸 때마다 뭐라고 호칭할지 고민한다”며 “‘전 대통령’이 아닌 ‘전두환씨’가 맞다고 생각한다. 전씨는 국민이 준 총칼로 주권자인 국민을 집단 살상한, 어떤 경우에도 용서할 수 없는 학살을 자행했다”고 했다. 이어 5·18 구묘역으로 이동해 구묘역 입구에 있는 ‘전두환 비석’을 지나면서 이를 꾹 눌러 밟았다. 이 후보는 “저는 올 때마다 잊지 않고 밟고 지나간다. (그런데) 피해가기 어려운데도 꼭 피해가는 분들이 있긴 하더라. 윤 후보는 전두환씨를 존경하기 때문에 밟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8일 광주를 방문한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도 전두환 비석을 밟았다. 심 후보는 “전두환을 롤모델(본보기)로 삼고 있는 윤 후보는 광주 방문 자격이 없다”면서 “윤 후보는 망발을 일삼고 제대로 된 사과도 없이 국민을 개와 연관짓는 정치인이다”고 비난했다. 반면 보수적 성향이 강한 윤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전두환 비석을 피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운데)가 지난달 22일 오전 광주 북구 망월동 5·18 구묘역(민족민주열사묘역)을 참배하기 위해 입장하며, 묘역 입구 땅에 박힌 전두환 비석을 밟고 서 있다. /연합뉴스

◇5·18 헬기사격 사실관계, 966억원 미납 추징금

한편, 전두환 전 대통령은 법적 분쟁에도 휩쌓여 있던 상황이다. 그의 별세로 5·18 헬기사격 사실관계를 놓고 벌어진 형사재판은 공소기각으로 종결될 가능성이 크다.

법원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법에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던 상태다. 광주지법 형사1부(부장 김재근)는 오는 29일 공판을 열기로 했는데 이 공판이 항소심 마지막 변론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이 이날 별세하면서 재판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공소기각으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공소기각은 형식적 소송조건에 흠이 있을 때 법원이 실체적 심리를 하지 않고 소송을 종결하는 것이다. 형사소송법은 피고인이 사망한 경우 공소기각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통은 별도로 재판을 더 열지 않고 피고인 사망이 확인되면 공소기각 결정을 한다.

전 전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지난 2017년 4월 발간한 회고록을 통해 조 신부의 헬기사격 목격 증언이 거짓이라고 주장하고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혐의를 받았다. 1심은 전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전 전 대통령에게는 1000억원 가까운 추징금도 남아 있다. 반란수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기소됐던 그는 1997년 대법원 판결로 무기징역과 함께 2205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의 추징금이 확정됐다. 지난 8월 기준 약 966억원이 미납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