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씨 아버지 윤기중씨는 제가 다녔던 연세대의 교수였습니다. 대학교에서도 알던 강의도 들었던 그 교수님이었습니다. 유복하게 일본 문무성 장학금을 받아서 히토쓰바시대학을 졸업하고, 학술원 지원을 받아서 산업부, 그 돌잔치의 엔화가 우리나라 돈 대신 돌상에 놓였을 정도로 일본과 가까운 유복한 연대 교수의 아들로 태어난 윤석열씨는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서울 법대를 나오고 검사로서 검찰총장으로 갑의 위치에서 살다가 다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공정과 상식을 외치고 나와 있는데, 그 개인과 아내가 모두 비리 의혹에 싸여있습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1 민평련 정기총회에서 한 말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가 일본의 지원을 받았고, 윤 후보 돌잔치에 한국 돈이 아닌 일본 엔(円)화가 돌상에 놓였다는 주장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이 윤 전 총장 SNS에 올린 윤 전 총장의 돌 잔치 사진. /윤석열 인스타그램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이 윤 전 총장 SNS에 올린 윤 전 총장의 돌 잔치 사진. /윤석열 인스타그램

그런데 조선비즈가 한국은행과 일본은행 홈페이지에 게시된 옛 지폐를 확인한 결과, 윤 후보의 돌상에는 엔화가 아닌 한국돈 ‘천환’이 놓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네티즌, 尹 돌사진 보고 ‘일본 엔화’라고 주장

송 대표가 ‘엔화’라고 주장한 지폐는 지난달 20일 윤 후보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돌잔치 사진에 등장한다. 윤 후보의 앞에 지폐 7매가 놓여 있는데, 이 지폐가 한국 돈과 모양이 다르고 일본 엔화라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인 친여(親與)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져 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난달 말 “네티즌 수사대가 발견했다”며, 해당 지폐가 현재 일본에서 사용되는 엔화와 모양이 유사하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돌잔치 사진에서 지폐 부분을 확대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돌잔치 사진에서 지폐 부분을 확대했다.
1960년 8월 15일 발행된 '천환' 지폐. /한국은행 제공
1960년 8월 15일 발행된 '천환' 지폐. /한국은행 제공
1960년 8월 15일 발행된 '천환' 지폐 설명. /한국은행 홈페이지 캡처
1960년 8월 15일 발행된 '천환' 지폐 설명. /한국은행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윤 후보가 돌잔치를 했던 1961년 12월에 한국과 일본에서 쓰였던 옛 지폐를 보면 엔화가 아닌 당시 한국에서 쓰이던 ‘환’과 모양이 같다.

이승만 정부 당시 한국의 지폐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러나 1960년 4·19혁명으로 이 전 대통령이 하야했고, 한국은행은 1960년 8월 15일 이 전 대통령 초상의 자리에 세종대왕을 넣은 새 지폐 ‘1000환’권을 발행했다. 윤 후보의 돌 사진에 등장하는 것처럼 좌측에 글자 두 개가 적혀 있고, 오른쪽에 사람 얼굴이 그려져 있다.

1953년 발행돼 1974년까지 사용된 일본 백엔권. /일본은행 홈페이지 캡처
1950년 발행돼 1965년까지 사용된 일본 천엔권. /일본은행 홈페이지 캡처

반면 당시 일본에서는 이런 모양의 지폐가 사용되지 않았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1엔권과 50엔권은 1958년, 5엔권과 10엔권은 1955년 발행이 정지됐다.

1961년 시점에 일본에서 쓰이고 있던 지폐 중 ‘두 글자’로 화폐 가치를 적은 지폐는 100엔(百円)권과 1000엔(千円)권 두 가지다. 100엔권과 1000엔권 모두 각각 ‘백엔(百円)’과 ‘천엔(千円)’이라는 글자가 지폐 가운데에 적혀 있다. 윤 후보 돌사진에 등장하는 지폐와 다르다.

또 윤기중 교수가 일본 유학을 간 시점도 윤 후보 돌잔치 이후다. 윤기중 교수는 1956년 연세대 상경대 경제과를 졸업하고, 1958년 연세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히토쓰바시대 대학원에는 1966년부터 1968년까지 다녔다. 그 후 연세대에서 교수를 지냈다.

이양수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수석대변인은 조선비즈 통화에서 “송 대표가 말한 지폐는 엔화가 아닌 옛날 한국 돈 천환”이라며 “왜곡과 거짓을 일삼는 송 대표는 즉시 허위 발언을 바로잡고 머리 숙여 사과하기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