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하루 앞두고 자신의 소년공 시절 고입 검정고시를 공부하던 일화를 소개했다. 이 후보는 “퇴근하면 곧장 학원으로 달려가 죽을 힘을 다해 공부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6일 서울 서대문구 청년문화공간 신촌파랑고래에서 열린 청소년·청년 기후활동가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후보는 17일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한 웹자서전 11편 ‘중학 과정 석 달 공부’를 통해 “공장에서 맞지 않고, 돈 뜯기지 않고, 점심시간에 자유롭게 공장 밖을 다닐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며 이같이 썼다. 이 후보는 그를 ‘홍 대리’라고 가리키며 “홍 대리처럼 되고 싶었다. 의외로 답은 단순했다. 고졸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에게 쥐어터지지 않고 산다’, ‘돈을 벌어 가난에서 벗어난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산다’를 목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검정고시 학원이란 게 있다는 걸 알아냈다. 3년 공부를 석 달 안에 해보기로 했다”고 당시 결심을 전했다. “터무니없고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내가 출세한다던 점쟁이의 말도 있지 않은가? 거기다 귓불도 성공할 상이라 했다”는 것이다.

이어 “퇴근하면 곧장 학원으로 달려갔다. 3킬로미터의 거리를 버스도 타지 못하고 뛰고 걷는 날이 많았다. 돌아올 때는 당연히 걸었다. 노트와 필기구를 사느라 용돈을 다 써버려 버스비가 거의 없었다”고 했다. “기진맥진해서 학원에 도착하면 찬물로 세수를 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왜 그리 덥고 졸리는지”라고 했다.

1978년 고입 검정고시 시험 응시원서 사진 속의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 후보 측 제공

그는 “시험이 한 달 남았을 때 도저히 공장을 다니며 공부해서는 어려울 것 같아 아버지에게 한 달만 공부에 매진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돌아온 것은 공장이나 똑바로 다니라는 무뚝뚝한 말이었다. 그때 나선 것이 엄마였다”며 “엄마는 그 자리에서 직권으로 내게 명령했다. ‘공부해라! 내가 속곳을 팔아서라도 돈 대주꾸마’.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버지도 압도하는 ‘위대한 엄마’였다”고 썼다.

이 후보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글을 올리고 “시험의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그간의 노력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며 수험생을 격려했다. 이 후보는 “여러분을 여러분답게 만드는 모든 것들은 어디 가지 않는다”며 “내일 하루는 쌓여온 시간과 자신을 믿고, 후회 없이 보내시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