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헝가리 대통령과 정상회담 후 ‘바다만 건너면 원전 입장이 바뀐다’는 비판이 야당에서 제기된 가운데, 4일(현지 시각) 체코 정부가 또 한국과 원전 협력을 강조했다. 탈(脫)원전 정책이 모순된다는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 총리는 4일(현지 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바르케르트 바자르 정상회의장에서 열린 한국-V4(비세그라드 그룹) 정상회의를 마친 후 공동언론발표에서 체코 두코바니 지역에서 진행되는 신규원전 사업과 관련해 “한국이 입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달라”고 했다.
바비시 총리는 “한국은 훌륭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며 “아랍에미리트(UAE)에서도 원전 건설을 성공한 만큼, 우리와도 진지한 논의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의 중유럽 원전 시장 진출 논의가 이뤄졌음을 시사한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도 서면브리핑에서 바비시 총리가 “원전 등 분야에서 협력을 계속해 나가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V4는 1991년 헝가리 비세그라드에서 결성된 폴란드·체코·헝가리·슬로바키아 등 중유럽 4개국 협의체다.
앞서 아데르 야노시 헝가리 대통령은 전날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후 공동언론발표에서 “원전 에너지 사용 없이는 탄소중립이 불가하다는 것이 양국의 공동 의향”이라고 언급해 국내에서 논란이 일었다. 문 대통령이 국내에서는 탈원전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외국 정상을 만나서는 원전의 효용성을 인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아데르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한 탄소 중립 발언을 전하며 진화에 나섰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아데르 대통령이 헝가리의 원전과 태양광 등 에너지 믹스 정책을 설명하자, 문 대통령은 “2050년 탄소중립까지 원전의 역할은 계속되나 신규 원전 건설은 하지 않고 설계수명이 종료된 원전을 폐쇄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태양광, 풍력, 특히 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와 수소에너지의 비중을 높임으로써 탄소중립을 이루어 나가고자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전체적으로 원전의 비중을 줄이자는 취지로 얘기했으나, 아데르 대통령은 ‘원전의 역할’에 방점을 두고 발언했다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아데르 대통령께서 (본인이) 이해한 대로 말씀하신 것 같다”라고도 했다.
또 청와대는 국내에서는 원전을 짓지 않으면서 해외 원전 시장에 진출하는 것 대해 ‘윈-윈’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가 개발한 원전 기술이나 노하우는 전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며 “국내 원전 산업 인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한국과 외국이) 서로 윈-윈하는 협력 방안을 찾으려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야권에서는 문 대통령의 원전과 관련한 행동이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양준우 대변인은 논평에서 “국내에선 원전 산업을 사장시키며 우수 인재는 전부 해외로 유출 시켜놓고, 헝가리에선 원전의 필요성에 공감했다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원전에 대해 국내용, 국제용 입장이 따로 있나, 바다 건너 해외 무대만 가면 입장이 달라진다”며 “청와대는 신규원전을 건설하지 않겠다는 설명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거 같다며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지만, 설득력 없는 말 잔치일 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