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9일 야당과 언론 단체와 반발 속에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일방 처리했다. 청와대는 이 법안에 대해 “피해 구제의 실효성을 높일 입법적 노력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찬성한다는 뜻을 밝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서면 질의응답에서 ‘언론중재법에 대해 세계신문협회나 국제언론인협회 등도 언론 자유 위축을 우려한다’는 질문에 “헌법 제21조와 신문법 제3조에서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두텁게 보장하면서도 언론에게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책임도 명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잘못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구제가 충분하지 않아 피해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입법적 노력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답변했다. 이어 “다만 구체적인 방안은 국회의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결정될 사안”이라고 했다.
문체위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위원회 대안으로 상정해 가결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위원과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만장일치로 찬성표를 던져 전체 16명 중 찬성 9명으로 통과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상임위원장석을 에워싸고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도종환 위원장은 그대로 기립 표결을 진행했다.
개정안은 언론사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 핵심이다. 이른바 ‘악의적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이지만, 언론계와 야권은 판정 기준 등이 모호하다는 점에서 언론의 권력 견제 기능을 막는 악법이라고 비판한다. 이 개정안은 닷새간 숙려기간을 거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다. 법사위를 통과할 경우, 이르면 25일 본회의에 상정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세계신문협회는 지난 12일(현지 시각) 성명을 내고 한국 정부와 여당에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를 촉구했다. 협회는 “개정안은 비판 언론을 침묵시키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전통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어 “‘가짜뉴스’의 발행 의도를 규정하는 기준을 정하려는 시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며 “가짜뉴스를 결정하는 기준은 필연적으로 해석의 남용으로 이어져 보도의 자유에 위해를 끼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뱅상 페레네 세계신문협회 최고경영자(CEO)는 “이런 유형의 규제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주의적인 정권에 의해 조장돼 왔으며, 정치·경제 권력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는 데 사용되는 편리한 수단이었다”며 “만일 개정안이 그대로 추진된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롭고 비판적인 토론을 사실상 억제하려는 최악의 권위주의 정권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국제언론인협회(IPI)는 17일 성명을 내고 “‘가짜뉴스’를 게재한 혐의로 고소된 언론사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한국의 법안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스콧 그리펜 IPI 부국장은 “세계의 권위주의 정부가 비판을 억누르기 위해 이른바 ‘가짜뉴스법’을 채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처럼 민주주의 국가가 이런 부정적인 흐름을 따르는 것은 실망스럽다”며 “매우 모호한 개념에 기초한 엄중한 처벌을 도입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에 명백한 위협이 된다”고 했다. 그는 과도한 징벌적 손해배상액이 언론인과 언론사에 경제적 파탄을 주겠다는 위협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