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유럽 국가의 경우 국왕이나 대통령, 총리가 외교 활동을 분담하고 있다”면서 “우리에게도 그런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구상이 이뤄지려면 개헌이 필요해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헌법기관장 초청 오찬 간담회에 참석하며 김부겸 국무총리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상춘재에서 박병석 국회의장,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김부겸 국무총리 등 헌법기관장을 초청해 오찬 간담회를 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공식 환영식과 오·만찬은 국왕이나 대통령이, 실무적인 정상회담은 총리가 하는 방식을 참고할 수 있다”면서 “앞으로 헌법기관장들도 각자 영역에서 대외 외교 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은 헌법기관장들에게 영국·오스트리아·스페인 순방 성과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 나라들은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어 한국과 상황이 다르다.

오스트리아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4일 오후(현지 시각) 빈 벨베데레궁에서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오스트리아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선언 장소 설명을 듣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오스트리아는 이원집정부제를 실시하고 있다. 행정부 수반의 권한이 대통령(국가 원수)과 총리에게 나뉘어 있다. 권력은 정부 수반인 총리에게 있고, 중요한 정책 결정은 총리가 대통령에게 자문을 구해서 하는 구조다.

문 대통령은 지난 13~15일(현지 시각) 오스트리아를 국빈 방문했을 때, 수도 빈의 호프부르크궁 빌하우스 광장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과 벨베데레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엔 알렉산더 판데어벨렌 대통령이 참석했다. 판데어벨렌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도 했지만, 한국과 오스트리아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한다는 발표는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와 회담에서 나왔다.

스페인은 국왕이 있는 입헌군주국으로, 의원내각제 국가다. 펠리페 6세 국왕은 15~17일 문 대통령이 국빈 방문했을 때 공식환영식과 국빈 만찬에 참석했다. 이번 국빈 방문에서 양국은 관계를 한 단계 격상하기로 하고 ‘한-스페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오스트리아와 마찬가지로 문 대통령과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의 회담에서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오스트리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14일(현지 시각) 빈 총리실에서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와 확대회담을 마친 뒤 회담 결과 관련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한국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가원수이고, 정부 수반도 대통령이 맡는다. 대통령은 행정부 책임자로서 각 부처 장관을 임명하고,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부를 통할한다. 정부 수반이 총리인 오스트리아·스페인과 다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날 문 대통령 발언에 대해 “개헌까지 의도한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면서 “외국 정상이 방문했을 때 일정을 분담하거나, 각자 외교 활동을 좀 더 많이 하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