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27일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주요국보다 뒤쳐졌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 등 고위직을 지낸 인사 중 백신 확보가 늦었다고 인정한 것은 강 전 장관이 처음이다. 강 전 장관은 지난 2월까지 외교부 장관을 지냈고, 백신 확보 지연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27일 서울시 서대문구 홍은동 스위스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2021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성평화회의' 종합토론에 앞서 토론자료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강 전 장관은 이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여성평화회의에서 “백신에 있어서는 우리가 좀 늦었다”면서 “우리가 ‘국제사회에 협력하면서 이것을 하자. 정말 성숙한, 국제사회의 한 책임 있는 나라의 역할을 하자’고 한 논의에 적극 참여했다”고 했다. ‘정부가 국제사회의 공평한 백신 공급 노력에 협력했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발언이다.

이어 강 전 장관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모든 나라 인구의 20%가 백신을 공평하게 맞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코백스 퍼실리티가 굉장히 흔들리고 있다”며 “백신을 생산하는 나라들이 그걸 쥐어 잡고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코백스 퍼실리티는 WHO가 주도하는 일종의 ‘전 세계 백신 공동구매 프로젝트’다. 국제사회가 코로나 백신을 공평하게 분배 받을 수 있도록 WHO를 비롯해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유니세프 등이 참여하고 있다.

강 전 장관은 “(코백스 퍼실리티) 논의에 저희도 적극 참여했는데, 어느덧 다른 나라들이 먼저 백신을 확보해 선점한 상황이 됐다”며 “우리 스스로 개발하겠다는 우리 백신 개발도 늦어진 상황에서”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부의 일차적인 책임은 뭐니 뭐니 해도 국민의 생명 보호”라며 “백신이 나오고 있을 때 다른 나라 동향을 보면서 우리도 적극 확보해야 한다는 노력을 정부가 제가 있을 때도 많이 했고, 지금도 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주요국들이 백신을 선점한 것에 대해 ‘이기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코로나 위기가 더 크게 확산하자 각국은 각자도생에 바빴다”면서 “백신도 개도국에 공평하게 공급되어야 한다는 정신이 사라지고, 백신 선진국들이 자국민 우선을 내세우며 수출을 통제하려는 이기주의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인류가 함께 어려울 때 강대국들이 각자도생의 모습을 보인다면, 국제적 연대와 협력의 정신이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관계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강 전 장관은 “북한은 코로나를 실존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다른 나라와 모든 교류 및 접촉을 전면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 와중에도 핵무기와 미사일 능력을 계속 고도화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북한과 평화롭고 외교적 관여만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달성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그는 “만만치 않은 과제임이 분명하다”며 “북한의 핵 능력 증대는 글로벌 안보 체제의 근본 틀인 핵 비확산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를 되돌리기 위한 노력은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등 관련 국제 규범을 준수하며 계속돼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강 전 장관이 지난 2월 퇴임한 후 이날 첫 외부 강연을 했다.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 합류하며 대외 활동을 재개했지만, 재직 당시 정책 상황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