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근 기확예산처 장관과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4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 얼라이언스 출범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뉴스1

정부가 올해 '한국형 자발적 탄소시장'을 만들기 위한 법을 제정하겠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 자발적 탄소시장이란 기업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한 실적(탄소 크레딧)을 거래하는 곳이다. 정부가 2015년부터 배출권 거래제를 운영 중이지만 대기업 위주여서 중소기업, 스타트업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배출권 거래제 하에서는 기업의 탄소 감축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거래 가격이 낮게 형성된다는 한계도 있었다.

탄소 크레딧 거래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금융 데이터 분석 업체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에 따르면, 세계 자발적 탄소 시장 규모는 2024년 14억달러(약 2조원)에서 2030년 최대 350억달러(약 52조원)로 확대될 전망이다. 현재 미국이 최대 시장이고 일본, 영국, 싱가포르 등도 거래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에는 탄소 감축 실적 평가 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한다. 기업이 그 나라 경제 상황과 기술 수준에 부합하는 감축 실적을 보유했는지 제대로 평가할 수 있어야 크레딧이 제값에 거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린워싱(green washing·기업이 보유 기술을 실제와 다르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부풀리는 행위) 여부도 가려져야 한다.

그런데 국내에는 정부가 평가를 맡길 만한 역량을 갖춘 기관이 없다고 한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국내 평가 기관이 있지만, 아직 실적이 부족해 (정부와) 협업하기에는 어려운 수준"이라며 "단기적으로는 해외 평가 기관과 협업하고 중장기적으로 국내 평가 기관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라고 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국내 평가 기관 육성이 시장 규모 확대를 좌우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자국 기관이 일본 산업 구조에 맞는 기준을 토대로 기업의 감축 실적을 평가한 결과 대·중소기업의 거래 규모가 꾸준히 확대되는 추세다. 반대로 해외 기관에 100% 의존하는 싱가포르는 소수의 대기업 위주로 거래가 이뤄지는데, 중소·중견 기업에게 해외 평가 기관의 높은 인증 수수료와 복잡한 절차가 진입 장벽이 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일본, 자국 기관이 평가...산업 구조 맞춤형 기준 갖춰

2023년 10월 11일 니시무라 야스토시 당시 일본 경제산업상이 도쿄증권거래소에서 J-크레딧 거래시작을 알리는 타종 행사를 하고 있는 모습. / 니시무라 야스토시 페이스북 캡처.

일본은 2023년 자발적 탄소시장을 개장했고 작년 기준 시장 규모가 4억9000만달러(약 7200억원)로 집계됐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GII는 최근 보고서에서 "일본의 자발적 탄소시장 규모는 앞으로 연평균 27%씩 성장해 2034년 지금의 9배 수준(약 42억9831만달러, 6조34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품질보증기구(JQA) 등 자국 기관이 탄소 크레딧을 인증·평가한다. JQA는 자국 기업에 해외 평가 기관에 비해 평가 기준을 완화해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가령,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평가 기준 중에 '추가성(Additionality)'이라는 게 있다. 기업의 탄소 감축 노력이 순수하게 환경 보호를 위해 이뤄졌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기업이 탄소 감축을 통해 법적 의무를 지키게 됐거나, 이익 증가 등의 결과를 얻었다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해외 평가 기관은 이 추가성 여부를 점점 더 엄격하게 따지는 추세라고 한다. 반면 JQA는 기업의 탄소 감축 실적이 회사 이익에 일부 기여했어도 크레딧을 인증해 주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한국과 비슷하게 제조업 비중이 높다. 제조업체가 공정 효율화 등을 통해 탄소 감축을 했어도 기업 이익이 개선됐다는 이유로 탄소 감축 노력이 저평가될 수 있다는 산업계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 해외 의존하는 싱가포르... "중소기업 접근성 떨어져"

싱가포르는 일본처럼 2023년에 자발적 탄소시장을 개장했는데 거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소수의 대기업이 거래를 독점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거래소 자체 분석에 따르면 탄소 크레딧 거래 규모는 작년 기준 1500만달러(약 220억원) 수준이다. 또 작년 연간 거래량의 40%가 1분기에 집중됐고 거래가 '소수의 에너지 대기업'에 의해 이뤄졌다고 한다.

이런 상황의 원인 중 하나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탄소 감축 실적을 평가받기 어려운 구조가 꼽힌다. 싱가포르는 해외 기관에 탄소 크레딧 인증·평가를 의존하는데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것이다. 글로벌 회계·컨설팅 그룹 KPMG 싱가포르는 보고서를 통해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검증을 마치고 실제 매출(크레딧 판매 수익)을 확인하기까지 많은 비용이 필요하고, 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했다.

해외 평가 기관의 평가 기준이 서로 다르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싱가포르 에너지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각 기관의 평가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등급을 직접 비교하기 어려워, 투자자들은 여러 기관의 결과를 교차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