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신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국민연금이 적정·합리적 가격의 주택을 공급하는 재원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지난 17일 취임식에서 밝혔다. 값싼 공공주택 공급이 청년·신혼부부 주거난을 덜고 결혼·출산을 촉진하면, 장기적으로 연금 재정에도 긍정적일 수 있다는 논리다. 김 이사장은 싱가포르 중앙연기금(CPF)을 사례로 들었다.
◇ 싱가포르 가구 90% '자가'… 연기금 미리 인출해 집 사는 구조
싱가포르 10가구 중 9가구는 '자가(自家)'라고 한다. 또 전체 거주 가구의 77%는 주택개발청(HDB)이 지은 공공주택에 산다. HDB 주택을 살 때는 매매가의 일부를 선납하고, 나머지는 장기 주택담보대출로 갚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이때 계약금과 대출 상환금에 CPF 개인계정 적립금을 사용할 수 있다. 한국처럼 한꺼번에 거액을 들이지 않고도 집을 보유할 수 있는 구조다.
예컨대 30대 부부의 CPF 잔액이 8만S$(싱가포르달러)이고, 첫 주택 구매자라 정부로부터 크레딧 6만S$를 받는다고 가정하자. 42만S$짜리 HDB 주택을 살 때 25%인 10만5000S$를 CPF로 내고, 75%인 31만5000S$는 25년간 대출로 조달한다. 그러면 월 상환액은 약 1430S$(약 164만원) 수준이다. 이때 원리금도 CPF 계정에서 공제할 수 있다. 다만 CPF를 주택에 썼다면, 주택을 팔 때 CPF로 쓴 원금뿐 아니라 '계정에 그대로 뒀다면 붙었을 누적 이자'까지 내 계정에 도로 넣어둬야 한다.
이런 구조가 가능한 이유는 CPF가 정해진 목적에 따라 인출해 사용할 수 있는 개인 계정 적립금 형태로 설계됐기 때문이다. 또 싱가포르 토지의 약 90%가 국가 소유라, 공공주택 부지 확보와 대규모 공급이 용이한 것도 이 제도를 뒷받침한다.
반면 한국은 국민연금이 기금을 통합 운용(pool)하고 토지의 대부분이 민간 소유라, 싱가포르 모델의 단순 이식은 어렵다.
◇ 전문가 "공공주택은 재정이 할 일"… 복지부 "김 이사장 개인 의견일 뿐"
국민연금이 공공주택에 투자하는 현실적 방식으로는 국가·지자체가 공공임대주택 등을 위한 특정 목적의 채권을 발행하면, 국민연금이 이를 매입하는 '채권 투자'가 거론된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재정 사업을 국민연금으로 우회 조달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또 기금 운용의 제1원칙인 수익성은 물론, 독립성·안정성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정책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수익률이 낮아지거나 위험이 커지면, 그 부담이 가입자에게 돌아간다는 것도 문제다.
김성주 이사장의 취임사에 대해 복지부는 "김 이사장 개인의 의견일 뿐, 복지부와 협의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도 "주택 공급은 정부가 재정으로 해야 할 일"이라며 "청년을 진정으로 돕겠다면 그들이 은퇴했을 때 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개혁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앞서 국민연금의 공공 투자 활용 논쟁은 2010년대에도 정치권에서 반복됐지만, '정부의 쌈짓돈'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등으로 번번이 무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