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시내 한 삼계탕집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1년 중 무더위가 가장 심하다는 삼복(三伏) 가운데 마지막 날인 말복(14일)이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요즘,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지혜로 삼계탕이나 염소탕 같은 뜨끈한 보양식을 찾는 사람이 많다. 폭염 속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보양식을 즐기는 모습은, 한국의 여름철 풍경을 대표하는 장면 중 하나다.

전통적인 보양식의 절대 강자로 삼계탕을 빼놓을 수 없다. 손질한 닭의 배 속에 불린 찹쌀, 인삼, 대추 등을 듬뿍 넣고 푹 삶아낸 삼계탕은 남녀노소 모두가 선호하는 여름철 대표 보양식이다. 뜨거운 국물과 함께 땀을 흘리며 먹는 삼계탕은 마치 더위를 이기는 작은 의식처럼 여겨진다. 그 인기를 반영하듯, 작년 한 해 국민 1인당 약 26마리의 닭고기를 소비한 것으로 추산될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닭 사랑’은 유난하다.

삼계탕의 절대 강자 자리를 위협하며 염소탕이 새로운 대항마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 초 ‘개고기 금지령’이 시행된 이후, 염소탕을 찾는 이가 눈에 띄게 증가한 덕분이다. 복(伏)날에는 사람인변(人)에 개 견(犬)자가 합성된 만큼 개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개고기를 즐기던 마니아층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개 식용 금지법이 통과된 이후, 개고기 식당들은 줄줄이 폐업하고 염소탕 식당으로 변신하고 있다. 이는 염소 고기가 개고기 특유의 식감과 감칠맛을 어느 정도 재현할 수 있고, 보신탕과 염소탕의 조리법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개고기가 사라진 빈자리를 염소 고기가 꿰차며, 예상치 못한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맛닭 2호 모습. /농촌진흥청 제공

◇ 빨리 자라고 품질 좋은 ‘우리맛닭’

14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이 1인당 평균 소비한 닭고기는 약 26마리로 조사됐다. 작년 국내 닭 도축 마릿수는 10억1137만마리로 집계됐다. 이를 인구(약 5000만명)수로 나눠 단순 계산하면 약 20마리를 소비한 셈이다.

닭고기 수입량은 수출량보다 훨씬 많았다. 작년 국내 닭고기 총소비량은 78만9000톤(t)으로, 국내 생산량(60만7000톤)을 30% 이상 웃돌았다. 이를 고려해 국산과 수입을 합쳐 계산하면, 작년 1인당 먹은 닭고기는 약 26마리로 추정된다.

닭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시기는 단연 복날이 있는 여름이었다. 한 해 도축하는 닭 6마리 중 1마리는 크기가 작은 삼계(삼계탕용 닭)였다. 특히 7월에는 도축 마릿수가 1억마리를 웃도는데, 도축 마릿수가 가장 적은 2월과 비교하면 약 3000만마리 더 많은 수준이다.

우리나라 닭은 일부 토종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앞서 1980년대 이후 토종닭을 찾는 소비자가 생기자 가짜 토종닭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국산 종자인 종계(種鷄)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수입되는 상업용 종자의 국산화가 현실적으로 어려워 우수한 토종닭 종자 개발에 나선 것이다.

농진청은 전국에서 수집한 혼혈 토종닭을 15년에 걸쳐 외모 형태별로 선발했다. 순종 3~4종을 교배해 최고의 맛을 내도록 만든 게 농진청의 ‘우리맛닭’이다. 농진청은 2013년 우리맛닭을 상표 및 특허로 등록했다. 우리맛닭은 일반 닭보다 향이나 질감 등이 전반적으로 우수하다. 감칠맛을 내는 이노신이나 피부 노화 방지에 효과적인 콜라겐 등 성분도 더 많이 들어있다.

우리맛닭 1호는 800g 안팎의 삼계용이 되기 까지 50일 정도면 도달할 수 있다. 순수 재래종은 1.8kg까지 자라는 데 20주가량 소요되지만, 우리맛닭은 10주 정도면 같은 체중에 도달할 수 있다. 사육 기간을 절반 정도 단축할 수 있는 셈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상품성 있는 제품을 빠르게 만드는 것이 경쟁력인 시대에, 국산 품종 개발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보다 발전한 우리맛닭 2호는 삼계용으로 자라는 기간이 5주 정도다. 우리맛닭 1호보다 사육 기간을 2주 정도 단축한 셈이다.

농진청이 개발한 우리맛닭 1·2호 종계는 2022년까지 22만506마리 보급됐다. 우리맛닭이 개발된 이후 한 닭고기 업체는 해외에 지불해야 할 로열티 1178억원을 절감했고, 농가는 4796억원 수준의 편익을 본 것으로 집계됐다.

한만희 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센터 센터장(가운데)과 김관우 연구사(오른쪽)가 경남 함양에 위치한 센터 내 방목장에서 염소사를 배경으로 염소들을 바라보고 있다. /농촌진흥청 제공

◇ 개고기 자리 꿰찬 염소 고기… ‘국산 염소’ 개발에 박차

우리나라가 3년 뒤부터 ‘개고기 없는 나라’가 되면서, 개고기를 즐기던 사람들의 관심이 염소 고기로 향하고 있다. 올해 초 개 식용 금지법이 통과된 이후 나타난 변화다. ‘국내 최대 식용 개 시장’으로 불리던 모란시장도 정부 조치 이후 ‘모란 흑염소 특화 거리’라는 팻말을 내걸었다. 개고기가 사라진 자리를 염소 고기가 대신 채우게 된 이유는, 염소 고기가 개고기 특유의 맛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개 식용 종식법 시행에 따라 염소가 보양 대체재로 주목받으면서 염소 수요도 빠르게 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2021년 2027톤이었던 염소 고기 수입량은 2023년에는 6179톤으로 3배 이상이 됐다. 국내 사육 염소 숫자는 2010년 24만마리에서 2022년 43만마리까지 늘었다.

농진청은 이러한 추세에 따라 국립축산과학원에서 보존하고 있는 재래 흑염소 3계통을 활용해 산업화가 가능한 염소 신품종 개발에 나섰다. 뉴질랜드 등 외국 대형 품종에 국내 재래 흑염소 ‘당진계통’, ‘장수계통’, ‘통영계통’ 등 3계통을 접목 시킨다. 농진청은 검은 털색에 생산성이 높고, 육량과 육질이 우수한 신품종을 개발할 계획이다.

농진청은 올해 염소 합성종 20마리를 생산하고, 2027년에는 200마리까지 염소 개체수를 늘려 집단을 구축할 예정이다. 2029년에는 신품종을 발표하고, 2030년에는 지자체 축산 연구기관을 통해 농가에 보급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농진청은 국내 환경에 잘 적응하고, 생산성이 뛰어난 염소 품종을 개발·보급할 계획이다. 작년 기준 염소 고기 수입을 30% 줄인다고 가정했을 때 연간 334억원 규모의 수입 대체 효과가 기대된다.

한만희 농진청 국립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센터 센터장은 “육량과 육질이 우수한 염소 신품종을 개발하고 신속하게 농가에 보급할 것”이라며 “농가 소득 증대와 염소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