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기준금리를 전 국민 온라인 투표로 결정할 수 있겠느냐. 누군가는 이를 '통화정책의 민주적 통제'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할 수도 있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 12일 오피니언 리더들의 모임인 '더플랫폼'의 자유시장경제 특별세미나에서 포퓰리즘을 좇는 정책 결정 방식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조 원장은 "수십 년에 걸친 경제학계의 연구는 통화정책이 대중의 압력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는지 생생하게 입증해 왔다"면서 "아무리 다수의 의사가 중요하다고 해도, 수학 문제의 정답을 다수결로 결정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3년부터 2015년까지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추진된 연금 2배 인상 등의 선심성 정책이 결국 아르헨티나의 재정과 경제를 파탄으로 내몰았다"며 "다수가 원하는 공공정책이 다수의 이익을 항상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애초에 삼권 분립을 설계한 미국 헌법 제정자들(Founding Fathers)이 사법부만큼은 선거로 선출하는 대신 존경받는 법률전문가를 선임하도록 한 배경도, 다수의 정치적 압력을 매개로 한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수결이라는 민주주의 원칙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기능해야 한다. 법의 지배를 인민 재판에 맡겨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자유시장 경제 체제에서 정부를 과도하게 신뢰하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조 원장은 "이상 기후로 급등한 신선식품 가격의 정부 책임론을 지켜보면서, 흉년이 들면 왕을 처형했었다는 고대문명이 연상되기도 한다"면서 "우리 사회의 모든 책임이 정부에 있는 듯하다"고 했다.
이어 "이런 분위기를 등에 업고 조여 오는 사회적 책임 압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권한 확대보다 책임 회피에 훨씬 더 마음이 가 있는 공무원이라도 규제 권한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가 경제의 세세한 부분까지 개입하여 더 좋은 결과를 만들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어떤 종류의 반도체를 생산할지, 어떤 주식의 수익률이 더 좋을지, 이러한 판단을 해당 분야 전문가보다 정부가 더 잘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한참 지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권위주의적 정부의 통제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정치 민주화를 이뤘다는 자긍심의 한구석에, 나의 불행이나 불안을 대신 책임져 줄 강력한 정부가 있기를 바라는 모순된 기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 원장은 이러한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규제 강화로 이어졌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규제 완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0~20년간 우리나라의 규제체제가 획기적으로 변화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며 "오히려 국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규제가 양산되는 상황을 종종 목도한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규제의 사례로 타다금지법 등 레거시(전통) 산업의 보호를 위해 혁신기업의 진입을 금지하는 규제, 정규직 노동자의 기득권을 보다 공고히 하는 방향의 노동시장 규제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조 원장은 이러한 포퓰리즘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식인의 적극적인 활동을 요청했다. 그는 "자유 시장경제 체제를 포퓰리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전문가·지식인들의 역할이 확대돼야 한다"면서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서 지동설을 부정해도 지구의 자전은 멈추지 않았지만, 경제·사회 정책을 논하는 전문가의 견해는 실제 정책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