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한국수출입은행에 내년 1조원 규모의 현금을 투입할 방침이다. 정부가 예산을 직접 수은에 수혈하는 것인데, 이런 ‘현금출자’ 방식으로는 2016년 이후 최대 금액이다. ‘K-방산’ 수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수은의 법정 자본금 한도를 25조원으로 늘린 데 따른 후속 조치다.

2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재부는 수은에 1조원 규모 현금출자를 단행하기로 가닥을 잡고 내년도 예산을 내부 협의 중이다.

K-9 자주포. /육군 제공

올해 초 국회는 수은의 법정 자본금 한도를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수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말 그대로 자본금의 한도를 키운 것일 뿐, 정부가 실제로 자본금을 납입해야만 수은의 ‘금융 실탄’을 채울 수 있게 된다.

정부는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현물·현금출자를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첫 출자 방식으로 올해 2조원 규모의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기업 지분을 현물출자하기로 했고, 현재 관련 행정절차가 진행 중이다.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 재가를 거쳐 6월 내 모든 절차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어 정부는 2025년 우선 1조원 규모의 현금출자를 단행할 방침이다. 현금출자는 정부 재정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기재부 몫의 예산이 소요된다. 수은에 마지막으로 현금출자가 이뤄진 것은 2022년으로 금액은 250억원에 불과했다.

계획대로 현금출자가 이뤄진다면, 규모로는 2016년 1조200억원 이후 9년 만에 최대가 된다. 당시엔 조선업의 부실화가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규모의 자본금 확충이 이뤄졌다. 실제 출자 금액이 확정되기까지는 정부 예산안 심의와 국회 의결 등 절차를 거쳐야 한다.

현물출자에 비해 현금출자는 수은 입장에서 여러 이점이 있다. 그중 하나는 자본 적정성 관리가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수은은 여느 은행과 같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13% 이상을 준수해야 한다. 그런데 현물출자를 통해 받은 주식은 중대한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에 평가손실이 반영돼 BIS 비율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

금융 여력도 현물보다 현금출자를 받았을 때 더 커진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1이라는 현금 자본금을 가지고 있으면 여신을 7.8배 내줄 수 있는데, 현물은 리스크 가중치가 달리 부여되기 때문에 5배밖에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손민균

수은에 대한 정부의 출자 계획은 우리나라의 대규모 방산 수주 계약을 당락 지을 하나의 수단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국내 방산업체들은 2022년 폴란드와 124억달러(약 16조6900억원) 규모의 1차 수출 계약을 체결했고, 현재 2차 계약으로 300억달러(약 40조3800억원) 규모를 추진 중이다. 폴란드는 이 2차 계약을 실제 성사하는 과정에서 한국 당국이 보장하는 금융 지원을 전제 조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무기 계약 건별로 6월(K-9 자주포)·11월(천무) 등 금융 계약 보증 시한도 달아둔 상황이다.

다만 정부의 현재 출자 계획표가 업계가 요구하는 ‘속도’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 논란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당장 정부가 올해 현물출자 방식으로 2조원 규모를 추진 중인 것을 두고서도 방산업계에서는 “충분하지 않다”며 연간 4조원 규모 출자가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번 1조원 현금출자 추진안 역시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되는 것이어서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도 사정은 있다. 특히나 현금출자 방식은 재정 여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현재 세입 여건이 좋지 않은 정부로서는 무작정 한꺼번에 현금 지원을 늘릴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미 내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을 통해 재량 지출의 10% 이상을 감축하겠다며 ‘건전 재정’ 기조를 예고한 바 있다. 특정 국가를 위해 정책 금융 지원을 몰아주는 것이 적절한 방향인 것인지 역시 논란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