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박성준 의원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추진하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양곡법)과 농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안(농안법)의 국회 본회의 처리가 불발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28일 여야 합의를 요구하며 두 법안의 본회의 상정을 연기했다.

양곡법과 농안법의 핵심은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면 정부 재정으로 메워주는 것이다. 두 법안은 입법 초기부터 여야 입장차가 확연했다. 법안 개정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은 농민 보호를 위한 법안이라고 주장했지만, 정부여당에선 농업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재정 누수를 심화시키는 법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야당이 주도한 양곡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바 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양곡법 개정안에 대해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농정 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혹평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두 법안이 불발하더라도 6월 개원하는 22대 국회에선 처리를 강행할 방침이다. 다만 야당이 추진할 신(新)양곡법과 농안법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양곡법, 작년안과 뭐가 달라졌나

양곡법은 쌀 가격을 보장하는 정책이다. 쌀값이 하락하면 정부가 초과량을 의무적으로 매입해 가격을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지난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과 민주당이 올해 재추진한 안은 무엇이 다를까. 목적이 같은 만큼 구조도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구체적으로 보면 지난해 법안은 ‘쌀 초과생산이 3~5% 이상이거나 햅쌀이 나오기 직전인 단경기(7~9월) 또는 수확기(10~12월) 쌀값이 전년 대비 5~8% 이상 하락했을 때’를 전제로 “정부가 농업협동조합 등에 매입하게 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번 개정안은 전제 조건을 ‘쌀값이 폭락하거나 폭락이 우려되는 경우’라고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정부 대응도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매입하는 등 대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매입을 수급 관리 방안 중 하나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상 ‘매입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법 조문이 해석될 수 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23일 충북 충주시 주덕읍 모내기 현장을 방문, 모내기 준비를 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오히려 지난해 법보다 전제조건을 ‘쌀 폭락과 폭락이 우려되는 경우’라고만 하고 있어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무매입을 시행할 시기냐 아니냐를 두고 충돌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이다. 법안 제정을 통해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점검하는 비용추계도 생략했다. 법안 대표 발의자인 신정훈 민주당 의원은 “쌀 생산량은 기온, 강수량, 일조시간 등 기상 여건에 크게 영향을 받아, 향후 생산량을 예측하기 어렵다. 수요량 역시 쌀값, 소비성향 등에 의한 영향으로 미래 수요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양곡법이 입법될 경우, 2030년 기준 정부가 남는 쌀을 의무 매입하는 데만 1조4000억원의 예산을 써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5000억원 규모의 보관비가 추가로 필요하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양곡법이 시행돼 쌀 생산이 더 늘어나면 매입·보관 비용이 현재보다 2배 수준으로 불어날 수 있다며 연간 비용이 3조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특정 작물에 올인, 수급 불균형 초래할 농안법

농안법은 특정 품목의 농산물 가격이 기준 이하로 내려가면 정부가 그 차액을 생산자에게 지원하는 가격보장제도다. 가격 폭락으로 인한 농가의 경영난을 예방하자는 취지이지만, 특정 품목 쏠림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추부터 무, 시금치, 고추 등 농가에서 재배하는 농산물은 수백종인데, 그 중 특정 품목만 가격을 보장할 경우 농가 입장에선 가격 보장 품목을 재배하는 게 경제적으로 유리하다. 결국 선택된 작물은 과잉 생산되고, 선택받지 못하는 작물은 농가에게 외면받아 생산량이 급감하게 된다.

이형일 통계청장(왼쪽 두 번째)이 지난 20일 전라남도 무안군 농작물 생산조사 현장에 방문해 양파를 수확하고 있다. /통계청 제공

그렇다고 가격 보장 품목을 마구 늘리면 정부 재정으로 이를 모두 충당하기가 힘들어진다. 한국농업경제학회는 5대 채소류에 대해 평년 가격 기준으로 가격 보장제를 시행하면 연평균 1조2000억원 정도가 든다고 분석했다. 가격을 보장하는 작물은 공급 과잉으로 시장에 남아돌고, 이는 결국 장기적인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만큼 정부의 재정 지출은 불어난다. 농작물 다양성 상실에 따른 식량안보 약화도 걱정거리다.

승준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곡물경제연구실장은 “양곡법과 농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쌀과 특정 품목 생산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로 인해 전반적인 농산물 공급 부족 및 가격 상승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농업단체도 농안법 추진에 대해 반대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한국농축산연합회는 입장문을 통해 “제도 시행 대상이 아닌 타 품목과의 형평성 문제도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고 했다. 국산 농산물의 최대 소비자인 외식업계도 “농산물가격안정제로 특정 농축수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그 외의 품목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을 경우, 우리 외식업체들은 더욱 벼랑 끝 위기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며 농안법에 반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