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5회 아시안리더십컨퍼런스(ALC) '미국 대선 이후 미국의 안보·통상 정책 방향은' 세션에서 맥스 부트 역사학자가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 원장, 수미 테리 미국외교협회 한국외교학 선임연구원, 매스 부트 역사학자, 류중위안 미국외교협회 중국학 선임연구원, 정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 고운호 기자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오는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한미 동맹 관계가 약화하고, 미국의 ‘고립주의’가 심화하는 만큼 한국 정부가 대외 불확실성에 대한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맥스 부트 미국 국제정책분석가는 22일 열린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미국 대선 이후 안보 및 통상 정책 방향’ 세션에서 “오는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게 된다면 바이든 행정부가 동아시아, 유럽연합(EU) 등 동맹국과 만들어온 협력 성과들이 위험에 빠질 것”이라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한다면 전통적인 미국 외교 정책을 고수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의 경우 조금 다른 준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트 분석가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이 과거만큼 미국에 의존할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상당한 유권자층이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고립주의를 원하고 있어 미군의 동맹국 주둔 등 당연하게 여겼던 조치들이 유지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고립주의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와 기업은 미국 리더십 변화 가능성을 고려해 대외 불확실성에 대한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주요 국가들과 협력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류종위안 미국외교협회 중국학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복귀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의 많은 경제 안보 조치는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며 “한국은 미국 대선 결과에 흔들리지 않는 대중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은 미국과 수천 마일 떨어져 있지만, 지리적으로 중국과 인접할 뿐만 아니라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며 “한국은 우선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특히 유럽연합(EU)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미국 대선 결과에 한국 기업들의 우려가 큰 만큼 견고하고 강도 높은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한국 기업들은 미국 대선 결과에 상당히 주목하고 있다”며 “지난 3년간 한국 기업이 미국에 집중 투자한 만큼 미국의 대내외 경제 정책 영향이 크게 작용한다”고 했다.

정철 원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복귀하면 양자 무역 수지를 맞추려 할 것”이라며 “반도체법은 안전할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에너지나 환경 관련 정책은 바이든 행정부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외국 기업에 제공되는 보조금이 달라질 수 있어 한국은 더 견고하고 강도 높은 준비를 해야 한다”며 “일관되고 지속 가능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트럼프 행정부에서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미 테리 미국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국제 정세가 북한에 유리한 상황에서 미국 대선이 치러진다”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북한은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지 않을 수 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또다시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국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한국에는 불리한 내용일지라도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예측 불가능하고, 일관성이 없다고 하지만 한 가지는 예측할 수 있다”며 “그동안 매체 인터뷰에서 122번이나 군대 감축이나 철수를 언급해 온 점을 생각해 보면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은 긴박감을 느끼고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