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영업용 화물차의 번호판 체계를 전국 번호판으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화물차는 현재 지역 번호판을 사용하고 있다. 전국 번호판을 도입하면 번호판을 양도·양수하는 과정에서 꼼수를 부리거나 지자체 공무원과 결탁해 불법 증차하는 것이 원천 봉쇄된다. 번호판을 발급받은 지역에 묶였던 화물차주 영업 범위도 전국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4일 정부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영업용 화물차 전국번호판 도입을 추진 중이다. 각 지역 내에서만 운행되는 택시와 달리 화물차는 전국 단위로 이동하는 만큼 전국 번호판 체계를 도입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12월 12일 오전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컨테이너를 싣고 있는 화물차가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전국 번호판 도입되면 지입제 감시도 강화될 듯

현재 국토부는 영업용 화물차량 총량 관리와 번호판 허가제 등을 통해 화물차의 수급을 조절하고 있다. 이러한 수급규제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등으로 급격하게 증가한 화물차의 과열 경쟁을 예방하기 위해 2000년대 초반 시작됐다. 그러나 영업용 화물차 번호판 한 개당 2000만~5000만원의 웃돈이 붙으며 거래되자 이를 노린 불법 증차가 성행하는 상황이다.

국토부는 화물차 번호판을 양도·양수하는 과정에서 불법 증차 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에서 영업권이 있는 화물차 번호판을 양도하고 부산에서 양수하는 과정에서 서울 번호판을 소각하지 않고 몰래 사용하는 방식으로 불법 증차 된다는 것이다.

지자체 공무원과 결탁해 영업용 화물차가 불법 증차된 경우도 있다. 지난 2022년 충남 홍성군청의 한 공무원은 해당 지역 화물차 운송업자로부터 뒷돈을 챙긴 뒤 대형 화물차 번호판 43개를 새로 발급해 줬다가 적발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번호판 체계가 지역 번호판으로 나뉘어져 있어 불법 증차 근절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전국 번호판이 도입되면 특히 번호판을 빌려 운송하는 지입차량에 대한 감시가 촘촘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입제란 화물차주가 본인 차량을 운송사(지입 전문업체)에 등록해 운송사의 면허 번호판을 달고 영업하는 것을 뜻한다.

국토부는 개인 화물차주보다 수십 개에서 수백 개 번호판을 쥐고 영업하는 대형 업체에서 불법 증차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국토부는 전국 사업용 화물차량 45만 대 중 지입 차량이 20만여 대가 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는 지입제 폐단을 근절하기 위한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지난 1월 국토부는 번호판 사용료나 명의이전 비용을 요구하는 경우 운송사에 대한 과태료를 기존 5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대폭 높이고, 최대 감차 처분까지 내린다고 발표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22년 건설기계 등록번호표에서 지역명을 없앤 전국 등록번호표를 도입했다. /국토교통부 제공

◇ 화물차 운송 범위, 전국으로 확대되나

화물차 전국 번호판이 도입될 경우 영업권도 전국 단위로 확대될 전망이다. 현재 화물차는 번호판에 시도를 표시하고 등록된 지역에 상주하며 영업해야 한다. 단발적으로 물량을 받아 이송할 수는 있었지만, 정기적으로 다른 지역 화물을 계약해 운송하는 데 제한이 있었다.

정부는 택시나 버스의 경우 각 지역 안에서만 운영되지만, 전국 단위로 물량을 주고받는 화물차는 영업 방식이 다르다고 판단하고 전국 단위 사업자인 화물차 특성에 맞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굴착기, 덤프트럭 등 건설기계의 경우 2022년부터 전국 번호판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국토부는 전국 번호판을 도입한 뒤 영업권을 전국 단위로 풀 것인지, 인근 시도 지역까지만 허가할지를 놓고 검토 중이다.

전국 번호판 제도가 도입될 경우 화물차 운전자가 이사할 경우 번호 변경과 번호판 재발급 등의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된다. 최근 성장 중인 택배업계에서 타 시도에서 영업할 수 있게 해달라는 규제 완화 요청이 빗발친 것도 제도 개선에 힘을 보탰다.

국토부는 용역을 통해 도입 시기와 도입 방식, 전국 번호판 도입 후 번호판 교체비 등 비용 감축 효과를 분석할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역을 바꿀 때마다 번호판을 바꾸지 않아도 되면 운송사와 화물차주의 불편함을 덜 수 있을 것”이라며 “화물차 전국 번호판 도입에 대한 지자체나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화물차 업계 한 관계자는 “지자체가 각각 관리해 지입차 번호판 관리가 허술한 경우가 있었는데, 정부가 나서 관리하면 빠져나갈 구멍이 없을 것”이라면서 “개인 화물차주들은 전국 번호판으로 바꿀 경우 영업 구역이 넓어지는 만큼 찬성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