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불산단 전경. /영암군 제공

국제사회의 해양 분야 친환경 규제 강화 움직임에 대응하고, 국내 조선 기자재 중소기업의 수출길 개척을 목표로 정부가 추진한 ‘다목적 해상실증 플랫폼 구축 사업’이 삐걱대고 있다. 2020년 시작해 내년 선박 인도를 목표로 삼았지만, 공정이 지연되고 있는데다 아직까지 명확한 진수 계획을 세우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업의 핵심은 국내 업체가 개발한 해양·조선 관련 친환경 기자재를 해상에서 실제로 사용하고, 운용 실적(track record)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실증용 선박을 건조하는 것이다.

배를 바다에 띄우는 ‘진수’ 계획은 선박 건조에서 필수적인 과정이다. 발주처인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KOMERI, 이하 코메리)이 입찰 심사 과정에서 제대로 검토했어야 할 부분이지만, 이를 누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 지역 조선업체에 일감을 주겠다며 시작한 사업이지만 정작 선박 건조는 전남 지역 업체로 넘어가는 등 입찰 업체 선정 과정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사업 계획 및 공정 진행 전반에 대한 정밀한 검토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 부산 조선업체 살린다더니 전남 업체가 수주

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다목적 해상실증 플랫폼 구축 사업’(이하 다목적 플랫폼 사업)은 문재인정부 임기인 2020년부터 시작됐다. 2018년 1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거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을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재 실증, 자율운항 핵심기술과 선박개발을 지원하겠다”고 했고, 이후 산업부와 코메리 등 관계기관이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산업부와 코메리, 부산시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총 430억원(국비 257.5억, 시비 143.5억, 민자 28억)의 예산을 투입하는 ‘다목적 플랫폼 사업 계획’을 수립했다. 사업의 핵심은 1만7000톤(t)급 해상실증 선박을 건조하는 것으로, 여기에만 340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부산시의 예산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사업은 당초 침체에 빠진 부산 지역 조선업체에 일감을 주겠다는 목적이 있었다. 최초 계획서에서 코메리는 “전국 조선기자재 기업 중 43.1%가 부산광역시에 분포돼 있다. 부산 지역에 해상실증 선박을 설계하고 건조, 운용 가능한 기업이 다수”라며 “조선해양산업과 가장 연관성이 높은 부산 지역의 침체 및 부품·기자재 기업 중심 회복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 영도에 소재한 한국조선해양기자재연구원(KOMERI)의 전경.다목적 해상실증 플랫폼 구축사업의 주관 기관이다. /KOMERI 제공

하지만 당초 계획과 달리 이 사업은 부산 업체가 아닌 전남 영암 대불산단에 소재하는 Y업체가 수주했다. 내부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는 “처음엔 부산 업체들을 먼저 접촉했으나 사업성 부족 등의 이유로 대부분의 업체가 포기를 했다”면서 “사업 초기부터 선가가 제대로 책정되지 않았다는 ‘저가 발주’ 지적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사업은 코메리가 2021년 5월 나라장터에 공고한 이후 4차례나 유찰됐다. 이후 5번째 입찰에서 계약 방법을 총액입찰에서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전환하자 응찰자가 나와 최종 낙찰됐다.

다만 부산 조선산업 진흥을 목표로 부산시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한 사업을 타지역 업체가 수행하게 됐음에도 시비가 계속 들어간 것은 다소 의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부산시장은 민주당 소속 오거돈 전 시장이었다.

◇ 배는 어떻게 띄울 건데…불명확한 진수 계획

사업을 수주한 Y업체는 지난 5월 강재절단(Steel Cutting)을 하고, 현재 선박 조립 공정을 진행 중이다. 당초 11월까지 조립 공정을 모두 마치기로 했으나, 공정이 많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건조 계획서에 따르면 11월말까지 전체 공정의 43.5%를 완료해야 했지만, 현재까지 공정률은 18%에 그친다.

공정 지연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배를 다 짓더라도 바다에 띄울 방법이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다목적 플랫폼 사업’을 통해 짓는 선박은 길이 132m, 폭 23m, 경하중량(Light Weight) 4690t의 중대형 선박이다. 이 정도 크기의 배는 보통 플로팅 독(floating dock)에서 메가 블록을 최종 결합한 후, 독에 물을 채우는 방식으로 진수를 한다. 하지만 이 선박을 건조 중인 Y업체는 이 배를 띄울 수 있는 독이 없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 떠 있는 길이 270m의 플로팅 독(floating dock). 플로팅 독은 육지에서 만든 선체 블록들을 옮겨 건조한 뒤 도크를 가라앉혀 배를 바다에 띄우는 설비를 말한다. /삼성중공업 제공

진수시설이 없는 Y업체는 어떻게 배를 진수하겠다고 하고 사업을 수주했을까. Y업체는 입찰 시 제출한 사업계획서에서 영암에서 여수로 배를 옮겨 진수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Y업체는 구체적인 진수 업체로 ‘여수해양’을 제시하고, 해당 업체와 주고받은 ‘독 사용 허가 공문’을 근거로 제출했다. Y업체는 그동안 몇 차례 중소형 선박을 여수해양의 플로팅 독을 활용해 진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수해양 관계자도 “Y업체와 내년 5월 중 1~2일가량 독을 대여하겠다는 문의를 받았고, 가능하다고 답변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번에 짓는 배는 그동안 외주 방식으로 진수를 한 배와 규모가 다르다는 점이다. 우선 전장이 130m가 넘는 배를 여수까지 옮길 방안이 마땅치 않다.

국내 대형 조선 3사의 한 고위 관계자는 “영암에서 여수까지 배를 옮기려면 바지선에 실어야 한다. 그런데 국내 바지선 중 130m 길이에 달하는 선박을 실을 만한 바지선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영암에서 지은 중대형 선박을 바지선에 싣고 가 여수에서 진수하겠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여수해양 관계자는 “우리는 진수 작업만 관여할 뿐, 배를 어떻게 가져올지는 Y업체가 해결할 문제”라고 했다.

업체가 최초 제시한 진수 계획을 실현하긴 어렵다는 점은 코메리도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코메리가 노용호 의원실에 제출한 작업 감독 일지에 따르면 지난 8월 22일 Y업체와 “생산공정 지연과 진수공법 변경 등에 대해 협의했다”고 기록돼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현재 Y업체는 대불산단 내 설치된 공동 플로팅 독을 이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계획도 불가능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공동 플로팅 독의 전장이 115m로 현재 건조 중인 배보다 크기가 작기 때문이다. 조선 3사 고위 관계자는 “독보다 큰 배를 어떻게 독 안에 넣느냐. 불가능한 진수 계획”이라고 했다.

진수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당초 이용하기로 한 여수해양의 플로팅 독을 이용한다면 배를 메가 블록 상태로 여수로 옮겨 최종 결합 및 의장 작업을 하거나, 현대삼호조선 등 인근 대형 조선소의 독이 비는 시기에 진수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Y업체가 시설 투자 차원에서 플로팅 독을 새로 짓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들”이라면서 “다만 비용이 당초 계획보다 많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상대 회사와 조율이 가능할지도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진수 방안을 찾는 것과 별개로 입찰 심사 과정에서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은 발주처인 코메리의 명백한 실책”이라고 꼬집었다.

진수 계획 및 공정 진행 상황과 관련해 기자가 Y업체에 수차례 문의했으나, 해당 업체는 “담당자가 회신을 할 것”이라고만 하고 연락을 주지 않았다. 코메리 측 관계자는 “답변할 의무가 없다”며 답을 피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계약 지연과 비용 상승 등으로 공정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진수 계획이 불확실한 점 등 사업 계획에 의문이 가는 부분이 있다. 조만간 코메리 담당자를 불러 상황을 꼼꼼히 확인해 볼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