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윳값 협상 기한인 지난 19일 오후 서울의 한 이마트에서 시민들이 우유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낙농가와 유업계가 올해 원유(原乳) 가격 인상 폭을 정하기 위한 협상 기한이 연기되면서 우유 가격 인상 시기가 일단 지연됐다. 그러나 원윳값 인상은 예고된 수순이어서 빵, 아이스크림 등 우유가 들어간 제품 가격도 함께 뛰는 ‘밀크플레이션’ 우려가 제기된다. 게다가 교통 요금 인상과 곡물 위기까지 겹치며 물가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낙농진흥회 소위원회는 지난 19일 원유가격 인상률을 정하기 위한 협상에 나섰지만, 타결하지 못했다. 이들은 오는 24일 오후 2시 다시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 유업계는 통상 7월 중 가격 인상 정도가 결정되면 8월에 이를 반영해 제품 가격을 인상했는데, 이 시기가 늦춰지게 된 것이다.

올해 원유 가격은 1리터(ℓ)당 최소 69원에서 최고 104원 사이에서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 인상 폭이 정해지는 대로 가격 조정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원윳값이 인상되면 이를 주재료로 쓰는 흰 우유 등 유제품 가격도 함께 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에는 원유 기본 가격이 ℓ당 49원 인상되자, 각 유업체는 흰 우유 제품 가격을 10% 안팎으로 인상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1ℓ 또는 900㎖짜리 흰 우유 제품 가격이 3000원 아래로 형성됐지만, 올해는 3000원대를 넘길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가격 안정을 요청한 상황이다. 앞서 농식품부는 지난 7일 유업체 10여 곳을 불러 “유가공 제품의 과도한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한 데 이어 12일 낙농업조합 20여 곳도 “원유 가격 인상 폭을 최소화해달라”고 밝혔다. 원윳값이 오르면 흰 우유 제품과 우유가 들어가는 빵, 아이스크림 등의 가격이 일제히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서울 대중교통 요금을 결정하는 물가대책위원회 개최일인 지난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에서 시민들이 개찰구를 통과하고 있다. /뉴스1

게다가 교통 요금 인상도 예고된 상황이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잇따라 대중교통 요금 인상안을 발표 중이다. 서울시는 다음 달 12일부터 버스 요금을 300원, 10월 7일부터 지하철 요금을 150원 올릴 계획이다. 서울의 지하철, 버스 요금 인상은 8년 만에 이뤄진 일이다.

곡물 위기도 물가 안정을 위협하는 요소다.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연장 거부 소식이 전해지며 밀 등 세계 곡물 가격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곡물 생산국 중 한 곳으로, 흑해 항로를 통한 곡물 수출길이 막히면 밀이나 옥수수 가격이 오르고 이에 따라 빵, 면 등 식품 가격도 인상될 수 있다.

특히 국내 업체들은 우크라이나산 곡물을 주로 사료용으로 쓰는 만큼 생산비 증가로 인해 축산물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의 경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세계 곡물 가격이 상승했고, 이 영향이 국내 식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 바 있다.

집중호우로 농작물 피해가 잇따르며 농산물 물가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번 집중호우로 인해 지난 18일 오전 6시까지 농지 3만1064.7헥타르(㏊)가 침수됐다. 이는 여의도 면적(290㏊)의 107배에 달하는 규모다. 비닐하우스와 축사 등 농업시설 35㏊도 파손됐다. 기후 변화에 민감한 농작물 가격이 널뛰면서 밥상 물가도 불안한 상황이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이달 내놓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3.5%에서 3.3%로 내렸다. 그러나 물가를 끌어올릴 요소들이 곳곳에 있어 3%대 초반 물가상승률 달성이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하반기 들어 교통비 인상에다 전기,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 추가 인상 가능성도 제기돼 악재가 겹친 상황”이라며 “정부는 물가 둔화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농작물 흉작으로 인해 연간 물가는 정부 예상치인 3% 초반대를 훨씬 웃도는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