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선 국세청 조사국장이 31일 국세청에서 역외탈세자 세무조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국세청 제공

LCD 등에 들어가는 부품을 제조하는 글로벌 기업 A사의 국내 법인인 B사는 국내 사업 철수를 앞두고 본사로부터 제품을 고가 매입하는 방식으로 손실을 유도했다.

법인 설립 이후 국내 사업에서 흑자를 이어오던 B사는 고개 매입으로 인해 -10%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국내에서 15년 동안 쌓은 수천억원대의 이익잉여금도 3년 만에 본사로 이전한 후 자본잠식 상태가 됐다.

이 회사는 본사로부터 제품을 매입해 국내 시장에 판매하는 구조임에도, 본사에 클레임 대가 명목으로 송금하는 등 국내 소득을 이전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클레임 대가는 제조 공정상 하자가 발생한 경우, 제조자가 판매자에게 소비자 보상 비용을 보전해 주는 것을 말한다. 통상적으로 판매자가 제조자에게 지급하는 경우는 없다.

국세청은 B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 B사가 국내 시장에서 철수하기 전에 고가 매입과 클레임 대가에 대해 과세했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부당한 국제거래로 국부를 유출하면서 국제수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 역외탈세자 52명(법인 포함)에 대해 세무조사를 착수했다고 31일 밝혔다.

국세청이 이번 세무조사에 착수한 대상자는 현지법인을 이용해 수출거래를 조작한 수출업체(19건)와 투자수익을 부당반출한 사모펀드 및 역외 편법증여한 자산가(12건), 사업구조를 위장해 국내소득을 유출한 다국적 기업(21건) 등이다.

특히 사주 일가가 지배하는 법인에 수출물량을 넘겨주거나 현지법인에 저가로 수출해 국내 귀속 법인 소득을 국외로 유출한 케이스가 다수 적발됐다.

국세청에 따르면 내국법인 C사는 해외현지법인 D에서 제품을 위탁 제조해 현지 거래처에 공급하는 ‘외국인도수출’ 방식으로 거래를 한다. 외국인도수출은 대금은 국내로 들어오지만, 물품을 국내 통관 없이 외국에서 인도하는 수출 방식을 말한다.

이 회사는 사주 자녀의 페이퍼 컴퍼니를 따로 설립한 후, A가 계속 사업을 수행함에도 페이퍼 컴퍼니가 사업을 수행하는 구조로 변경하면서 A의 수출물량이 급감했다.

이 회사의 사주 일가는 수출물량을 빼돌리며 축적한 페이퍼컴퍼니의 자금을 유출해 해외에 27채의 주택을 매입했다. 사주 일가는 이러한 해외 주택 취득 사실을 과세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임대 소득을 탈루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를 통해 사주 자녀 명의의 페이퍼컴퍼니 소득을 A의 소득으로 간주하고, A사에 과세했다. 사주일가가 해외부동산으로 벌어들인 임대소득에 대해서도 추징했다.

국세청은 국내에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영업과 판매 등을 해온 다국적기업 E에 대해서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E사는 자회사를 쪼개 각각을 단순 서비스 제공자로 위장하면서 세금 신고를 하지 않았다.

국세청 관계자는 “내 자회사가 모회사의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업활동을 수행하는 경우 자회사를 모회사의 국내사업장으로 보고 국내사업 수익 전체에 대해 신고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이 회사는 국내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뒀지만 세금납부 없이 소득을 국외로 가져가고, 국내 자회사는 비용보전 수준의 이익만 국내에 신고‧납부했다”고 설명했다.

국세청은 E사에 대한 세무조사 후 E사가 국내에서 거둔 수익 중 국내 사업장 귀속분에 대해 과세를 했다. 국세청이 추징한 세금은 수천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외탈세는 국부가 유출되는 위법행위이지만, 방식이 고도화돼 정황을 포착하고 조사 진행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외 과세당국과의 협조도 쉽지 않아 국세청 내부에선 ‘최고난이도 업무’로 통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디지털 포렌식·금융추적조사·과세당국 간 정보교환 등을 통해 역외탈세자에 대한 세금 추징이 늘고 있다.

최근 3년간 역외탈세자에게서 추징한 세금은 총 4조149억원으로 연 평균 1조3000억원을 상회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국제 무역·금융·자본 거래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과세당국 간 국제공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역외탈세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면서 “반사회적인 역외탈세에 대해서는 공정·적법 과세로 실체적 정의를 실현하면서 우리나라의 과세주권을 지켜나가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