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오전 충북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구제역 확진 한우 농가에서 방역당국 관계자들이 소 매몰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4년 만에 구제역이 발생하면서 방역당국과 축산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방역당국은 현재 구제역에 대한 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발령하고 총력 대응 중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과 고병원성조류독감(AI)에 대한 경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구제역까지, 축산농가에선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올해 첫 구제역이 발생한 지 15일이 지났지만 감염 경로는 아직까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바이러스의 유전 형질을 분석한 결과, 2019~2020년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의 상동성이 98.8%로 매우 높았다는 점에서 국외에서 유입됐을 가능성만 점쳐지는 상황이다.

◇ 구제역 발생 농장 모두 항체 양성률 낮아…방심이 부른 ‘화’

26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10일 충북 청주 한 한우 농장에서 구제역 의심 증세가 신고됐다. 방역 당국이 정밀 검사를 실시한 결과,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나왔다. 국내에서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나온 것은 2019년 1월 이후 4년 4개월 만이다.

구제역은 순우리말로는 입굽병, 혹은 입발국병이라고 부른다. 소나 돼지, 양, 염소, 사슴 등 우제목 동물에서 발병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다. 발굽이 두 개인 소나 돼지, 염소 등의 입과 발굽 주변에 물집이 생기는 병이다. 구제역에 걸린 가축은 식욕부진을 겪는다. 2주 정도 지나면 자연치유 된다고 하지만, 바이러스 전파원이 돼 다른 농가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해 확진 판정이 난 농가의 가축은 모두 살처분한다.

지난 18일 청주 한우 농가에서 예찰을 통해 11번째 구제역 발생이 확인된 이후, 일주일 동안 신규 발병은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낮다고 보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청주와 증평 등 제한 지역에서만 발생했다”며 “국내에서 사용 중인 백신을 접종하면 방어가 가능해 전국적으로 퍼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구제역의 잠복기가 최장 2주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직 추가 확산 가능성은 남아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가장 효과적인 구제역 예방책으로는 백신 접종이 꼽힌다. 농식품부는 이번에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들이 백신 접종을 소홀히 했고, 방역 수칙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축산 농가는 구제역 예방 차원에서 소 80%, 돼지 비육돈 30%, 돼지 번식돈 60%, 염소 60% 등 구제역 항체 양성률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충북도가 조사한 결과, 이번에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 7곳과 인근 3km 방역대 농가 12곳은 해당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충북도는 구제역 항체 양성률이 낮은 19개 농가에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했다.

백신 접종은 방역 최일선에 있는 축산 농가들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지만, 일각에선 방역 당국이 농가의 백신 접종 실태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농식품부가 구제역 청정국 지위 회복을 추진하면서 국내 구제역 발생 가능성을 낮게 봐 관련 방역 활동이 취약해졌을 것이란 점에서다.

구제역 예방을 위한 백신 일제접종. /뉴스1

◇ ‘백신 기피’ 이유가 있다… “농가 백신 접종 관리 체계화해야”

구제역이 발생하면 키우던 가축을 모두 살처분해야 한다. 살처분 보상금을 받더라도 농가로서는 상당한 피해에 직면하게 된다. 비용을 따지면 백신을 맞는 게 당연히 합리적인 결정이다.

하지만 축산농가들은 백신 접종이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인다.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암소 유산 피해와 접종부 육질 하락, 접종 과정에서 주사자의 부상 우려 등을 그 이유로 꼽는다.

영유아들이 예방 접종 이후 열이 오르는 것처럼 구제역 백신을 맞은 소는 체온이 1~2도가량 상승한다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체온 상승이 임신한 암소의 유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안 티자드(Ian Tizard) 미국 텍사스A&M대 수의학과 교수의 수의학 면역학(Veterinary immunology) 연구에 따르면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쇼크와 발열 및 백혈구 감소 등이 임신한 암컷의 유산을 일으킬 수 있다. 백신 접종으로 인한 유산율은 최대 10%에 달한다는 게 티자드 교수의 연구 결과다.

민경천 전 한우자조금관리위원장은 “한우 농가에서도 백신 부작용과 백신 접종에 대한 스트레스로 사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정부에서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사산에 대한 보상금을 주긴 하지만, 농민들이 체감하기에는 그 수준이 너무 낮다”고 말했다.

백신 접종부에 멍울처럼 고름이 잡혀 정육 할 때 해당 부위를 제거해야 해 도축 중량 감소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백신 접종 후 식욕 부진과 활동성 저하 등의 문제도 발생한다. 아울러 소들이 백신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주사자가 다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는 점도 농가에 부담이다.

축산농가들은 백신 접종률 제고를 위한 방안으로 백신 부작용에 대한 보상금 확대와 공수의사를 통한 백신 접종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민 전 위원장은 “구제역 백신을 자가 접종하라고 맡길 게 아니라 중앙이나 지방 정부의 지도 아래 공수의사가 접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한 곳만 뚫려도 피해가 막심하다는 점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