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의 수입 제품이 펫푸드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국산 제품을 만들지 고민이었죠. 과거 국산 펫푸드 시장은 소나 돼지에게 주는 사료를 만드는 수준이었습니다. 농촌진흥청의 각 부서가 머리를 맞대 곤충과 국산 농산물을 활용한 펫푸드를 만들었죠. 비만, 피부병, 항노화 등 기능성 반려견 전용 펫푸드의 국산화에 성공했습니다.”

국산 펫푸드 사료를 개발한 김기현 농진청 축산과학원 농학박사는 지난 3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반려동물을 단순히 동물이 아닌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반려동물의 질병을 예방하고 노화를 지연하는데 도움을 줄 고급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현재 반려동물을 연구하는 국가 기관은 농진청의 축산과학원이 유일하다. 정부 주도로 시작된 반려동물 프리미엄 사료 연구는 특허 11건, 산업체 기술이전 21건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교토대학교에서 동물영양과학 박사 학위를 딴 뒤 2013년부터 농진청에 입사한 김 박사는 펫푸드 개발 초창기부터 팔을 걷어붙였다. 2017년 정부에서 반려동물에 대한 연구 강화 지시가 내려왔다. 2017년 말 농진청은 펫누리관을 짓고 연구 개발에 나섰다. 농진청은 펫푸드 연구를 위해 2019년 동물복지연구팀을 신설했다. 펫누리관에는 비글견 20두의 개별 실내·야외 양육시설이 마련됐다. 펫푸드 제조실에서는 국산 소재를 활용한 반려동물용 기능성 사료 효능 평가가 이뤄진다.

대표적인 '사료용 곤충'으로 불리는 동애등에 모습. 동애등에가 농업과학원 구내식당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분해 중이다. /전주=김민정 기자

펫푸드 연구에서 중요시된 점은 재료부터 국산 제품을 찾는 것이었다. 국내에서 제작한다고 하더라도 원료를 수입하면 결국 수입산에 의존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국내 반려동물 식품 시장 규모는 2018년 8억9000억원에서 2019년 1조2600억원으로 확대됐다. 반려동물 식품 시장은 성장 추세지만, 수입 의존도가 70%에 달해 국산화 기술 개발 필요성이 제기됐다.

펫푸드 국산화라는 과제를 안은 축산과학원은 농진청의 농업과학원, 원예특작과학원, 식량과학원과 머리를 맞댔다. 각 소속 기관의 국내 특용 작물들을 이용한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고단백, 고칼슘을 함유한 동애등에는 대표적인 ‘사료용 곤충’이다. 동애등에는 농업과학원 구내식당에서 나온 남은 음식물을 먹고 비료를 만들어 내고, 다 자란 유충은 동물성사료로 쓰인다. 동애등에는 필수 아미노산과 지방산을 가지고 있어 반려동물의 면역력을 향상하는 역할을 한다. 관절·심혈관계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는 비만 예방을 위해 흑삼과 익은 누에인 ‘홍잠’을 복합적으로 섞어 사료를 만들었다.

동물 사료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단체와 갈등을 겪는 등 어려움도 있었다. 김 박사는 “동물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할 때 피를 뽑는 것처럼 좋은 음식을 먹고 난 뒤 수치 개선이 얼마나 이뤄졌는지 확인하는 정도”라며 “실험견들의 이름은 농진청 직원들의 이름을 따서 짓고 가족처럼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박사와 일문일답.

전주 농촌진흥청에서 만난 김기현 농진청 축산과학원 농학박사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주=김민정 기자

―펫푸드 재료로 쓰일 품목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첫 번째로 중요시한 것은 국내에서 자급 가능한 원료여야 한다는 점이다. 외국산도 건강 기능을 증진하는 데 의미가 있겠지만, 사료를 국산화하고 원료는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건강 기능과 안정성이 확보된 소재 중 반려동물에 독성이 있는 재료들을 문헌 조사 과정에서 모두 배제하는 과정을 거쳤다. 사료화가 용이하도록 1년 내내 수급이 가능한 재료들 등 여러 기준을 거쳐 나온 소재가 총 11가지다.”

―펫푸드 연구 성과는 몇 년 만에 나왔나.

“반려동물 자체에 대한 연구는 2010년부터 축산과학원에서 진행됐다. 펫푸드보다는 유전체 연구 등에 집중했었다. 업계에서는 가축 연구에만 집중해달라는 원성을 사기도 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농촌진흥청장 시절 주요 연구 분야로 반려동물을 꼽으면서 펫푸드 연구에 힘이 실렸다. 연구를 시작한 2017년에 건강에 도움을 주는 쌀인 ‘도담쌀’을 이용한 펫푸드를 선보였다. 간 기능과 비만 개선에 효과가 있다.”

―연구를 하며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실제 동물을 양육하고 생명을 다루는 일이다 보니 주말이나 휴일 없이 청소와 위생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외부적으로는 동물보호단체가 연구소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동물 건강 증진과 장수, 행복한 삶을 위해 연구한다는 입장이다.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좋은 음식을 먹은 그룹과, 안 먹은 그룹의 건강검진을 해 건강이 얼마나 개선됐는지 보는 것이다. 동물실험이라는 말을 들으면 고통이나 억압을 주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험윤리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진행하는 만큼 안전하게 이뤄진다.”

―실험견들의 복지는 어떤 것이 있나.

“개의 경우 한 마리 당 한 채의 집을 나눠 제공한다. 정부에서 제시하는 반려견 마리당 최소 사육 면적보다 넓은 수준이다. 집에는 에어컨과 온돌이 설치돼 있고, 외부로 이어진 개별 놀이터도 있다. 단체 운동장에서 다 같이 어울려 놀기도 한다. 목욕과 미용도 전문업체를 불러 주기적으로 시킨다. 장모종인 개들은 1년에 4번 정도 미용한다.”

―국가기관에서 반려동물 식품 연구를 하는 이유는?

“세계적인 반려동물 식품 회사들은 축적된 연구와 생산 시스템을 갖춘 반면 국내는 반려동물 식품 개발 역사가 짧다. 반려동물 식품 연구·개발·생산 기술은 기업의 영업비밀로 공개되지 않고 있고, 자본이 충분하지 않은 중소규모 산업체가 자체 연구 개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농진청 축산과학원에서 영양식품 기초 연구와 효능, 안전성 평가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기술을 개발해 동물 식품 관련 업체들이 기술을 이전해 사용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반려동물 식품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반려동물 식품 산업 활성화와 글로벌 시장 경쟁력을 키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농촌진흥청 펫누리관 밖의 단체 운동장에서 뛰어 노는 강아지들. /농촌진흥청 제공

―동애등에 등 곤충을 사료로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동애등에 유충은 단백질을 공급할 수 있고, 동물의 필수아미노산 조성이 우수하다는 특징이 있다. 항염증 기능을 가진 라우르산을 다량 함유해 반려동물 식품의 단백질 소재로 주목받는다. 반려견의 비만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동애등에 유충을 넣은 식품을 먹인 반려견의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가 약 10% 감소하는 효과를 확인해 사료로 생산했다.”

―우리 농산물로 어떤 재료들이 쓰이나.

“현재까지 총 11종의 우리 농산물을 이용한 사료들을 개발했다. 국내산 농산물 소재를 활용해 간 기능 및 비만 개선 기능을 품은 ‘도담쌀’, 피부질환예방을 위한 발효귀리 및 보라지유, 면역증진을 위한 흑삼 및 발효귀리, 비만 예방을 위한 홍잠 및 저항전분을 넣은 기능성 식품을 개발했다. 각각의 재료가 포함된 사료를 먹은 그룹과, 먹지 않은 그룹을 비교했을 때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특허 기술이 담긴 펫푸드는 어떤 종류로 출시되나.

“기술이전을 받은 제일사료에서는 갈색거저리를 포함한 식이 알레르기 저감용 사료를 제작한다. 도담쌀을 포함한 간 건강 개선용 사료는 파머스독에서 만들고 있다. 사료뿐만 아니라 반려동물 간식이나 사료 위에 뿌려 먹이는 파우더 제품으로도 출시되고 있다.”

―연구 중인 재료가 더 있나.

“현재는 해조류 중 장 건강 개선에 도움이 되는 품목을 찾는 중이다. 또 돼지고기를 활용한 반려동물 식품 개발이 가능할지에 대한 실험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돼지고기는 대부분 삼겹살과 목살 위주로 소비되는데, 뒷다릿살 소비가 아주 적다. 해외에서도 펫푸드 고급화를 위해 소고기나 칠면조, 연어 등을 넣으면서도 돼지고기는 잘 쓰지 않는다. 돼지고기가 단백질 공급원으로 괜찮은지 학술적인 측면에서 들여다보고, 돈육 자체가 갖고 있는 미지의 유효성분을 찾아보는 도전 중이다.”

농진청 농업과학원에 전시된 펫푸드 제품들. /전주=김민정 기자

―기술이전을 마쳐도 대중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대부분 중소기업에서 기술이전을 해갔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의 경우 펫푸드 기술력을 갖추기 어려워 농진청으로부터 어떤 성분을 얼마나 어떻게 넣는지 레시피를 받는 개념이다. 오프라인 유통망을 확보할 여력이 되지 않는 업체 제품들도 온라인 마켓에서는 구매할 수 있다.”

―펫푸드 국산화는 얼마나 이뤄졌나.

“수입 의존도가 70%까지 올라갔었지만, 최근에는 체감상 50% 정도로 낮아졌다. 문제는 극단화가 더 심해진다는 것이다. 경쟁력을 갖추려면 제품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제품력을 두고 싸워야 하는데, 소비자들은 수입산이 고급이라고 생각하고 국산이면 저급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한계가 있다.”

―펫푸드 시장에서 추진돼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외국에서는 펫푸드 연구에만 100년이 넘는 역사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길어야 30년 수준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가공 기술이나 제조 기술은 충분히 경쟁력을 쌓아왔다. 문제는 이미지다. 소비자들의 국내 사료에 대한 인식 전환이 가장 중요하다. 펫푸드 개발을 위해 정부도, 연구소도 전방위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국산 펫푸드가 결코 수입산에 비해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