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이 치솟는 물가를 억제하기 위해 공격적인 금리인상 행보에 나서면서 글로벌 채권시장이 30년 만에 최악의 침체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급격한 금리인상이 경제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전망에 미국 채권시장에서는 단기 국채 금리가 장기 국채 금리를 웃도는 역전 현상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장단기 금리차 축소나 역전은 일반적으로 경기 침체의 시그널(신호)로 여겨지는데, 미국 경제가 올해 연착륙에 실패할 경우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경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 글로벌 채권시장 약세…美 장단기 금리차 축소

28일 주요국 국채와 회사채 수익률을 나타내는 ‘블룸버그 글로벌 종합지수’는 지난해 1월 고점을 찍은 뒤 현재 11% 하락했다. 1990년 이후 고점 대비 하락폭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이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하락률인 10.8%를 넘어섰다. 시장가치로 환산하면 약 2조6000억달러(약 3171조원) 줄었는데, 이 역시 2008년 감소액(2조달러)보다 크다.

블룸버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포함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통화긴축에 돌입하면서 올 들어 채권시장이 작년 고점 이후 전례 없는 손실을 입었다”고 전했다. 최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르면 5월에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 워싱턴 연준 건물 전경

해외 투자은행(IB)들은 장단기 금리차(미국 국채 10년물 금리-2년물 금리) 축소에 주목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장단기 금리차가 축소되다가 역전되는 현상을 경기 둔화 신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실제 미 국채 10년물 금리와 국채 2년물 금리의 차이는 지난해 3월 31일 1.58%포인트(p)까지 확대된 이후 축소 전환하면서 지난해 말 0.8%p 내외로 줄었고, 최근 0.2%p까지 좁혀졌다.

일반적으로 단기 국채 금리는 정책 금리의 변화를 나타내고, 장기 국채 금리 움직임은 시장의 향후 경기 전망을 반영한다. 시장에서는 연준의 긴축 행보에 단기물 금리가 급등하고, 급격한 금리인상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장단기 금리차도 축소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 장단기 금리차가 축소된 이유는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필요시 다음 회의에서 0.5%p 금리인상에 나설 수 있다고 시사하면서 단기금리가 민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라며 “연준의 긴축 강도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러시아발 지정학적 위기와 인플레이션이 향후 경기 둔화 우려를 자극하면서 장기금리도 더디게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과거 장단기 금리차 역전 사례를 들어 향후 경기 침체 가능성을 제기한다. 한국은행 외자운용원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1980년과 1982년, 1991년, 2001년, 2009년, 2020년 등 6차례의 경기침체 기간에 앞서 모두 장단기 금리 차 역전 현상이 나타난 바 있다. 박민영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장단기 금리 역전은 채권시장 뿐만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미국에서는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고 난 이후 1~2년 이내 경기 침체가 뒤따랐다”고 말했다.

장단기 금리차 / 한국은행

현재 장단기 금리차 축소 흐름을 경기 침체 신호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1990년대 이후 금리 역전 뒤 경기 침체가 나타났던 국면은 모두 금리가 하락하는 시기에 이뤄진 반면, 이번에는 금리가 상승하는 국면에 나타나고 있다”며 “현 시점에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징후 역시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실제 지난 13~19일 기준 미국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는 18만7000건으로 5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미 고용시장이 견조한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낙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

◇ 추경·연준 긴축에 韓 국채 3년물 금리도 연고점

시장에서 글로벌 채권시장 약세와 미국 장단기 금리 축소를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이런 흐름이 우리나라 채권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의 통화정책 정상화와 이로 인한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인상 전망이 국내 장단기 국채금리를 밀어올리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와 서울채권시장에 따르면 지난 25일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2.5%를 돌파하면서 2014년 9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0.015%p 오른 2.871%를 나타냈다. 이 역시 2014년 9월 29일 이후 최고 수준이다. 국채 5년물 금리도 0.05% 상승한 2.713%에 마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5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추진한다는 소식도 채권시장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추경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려면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한데, 시중에 국채 물량이 급증할 것이란 전망에 국채 가격이 하락(금리 상승)하는 것이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대선 이후 추경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되면서 안정을 찾아 갈 것으로 기대됐던 국내 채권 시장은 글로벌 채권 시장의 약세에 동조되고 있다”면서 “여기에 이달 22일 대통령 당선인이 추가 추경을 공식화하면서 적자국채 우려가 재차 확대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