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윤석열 당선인의 승리로 막을 내리면서 채권시장이 안도하는 분위기다. 앞서 대선 경쟁에서 윤석열 당선인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모두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약속했지만, 윤 당선인 측이 제시한 재원 조달 방식이 적자국채를 덜 발행한다는 점에서 채권금리 상승 압력이 다소 완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채권시장은 치솟는 물가, 정치권의 추경 편성, 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외 충격에 연초부터 약세를 보였다. 14일 금융투자협회와 서울채권시장에 따르면 지난 11일 대출금리의 선행지표가 되는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1.6bp(1bp=0.01%포인트) 내린 연 2.251%을 기록했다. 국채 3년물 금리가 연 2.3%를 돌파한 지난달과 비교하면 안정을 찾았지만, 지난해 말 금리가 연 1.798%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선인이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당선인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채금리를 밀어올린 주된 요인은 정치권의 추경 추진과 증액 논란이다. 추경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려면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채권시장이 약세를 지속한 것이다. 적자국채 발행으로 시중에 국채 물량이 쏟아질 것이란 전망에 국채 가격이 하락(국채금리 상승)하고 있다.

이달 9일 대선을 앞두고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16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이 미흡하다면서 당선시 2차 추경을 편성하겠다고 공약했다. 당시 두 후보가 제시한 추경 규모는 약 50조원으로 비슷했다. 이는 채권시장 약세 재료인 만큼, 누가 당선됐어도 국채금리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평가다. 채권시장에서는 추경에 따른 적자국채가 1조원 발행될 때마다 장기금리가 1bp씩 오른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윤 당선인이 대선 승리로 사정은 다소 나아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윤석열 당선인이 제시한 추경 재원 조달 형태가 적자국채를 적게 발행한다는 점에서 국채금리 상승 압력이 상대적으로 덜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 당선인의 공약집을 보면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손실보상을 위해 50조원을 투입하지만, 그 재원 마련은 예산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확보할 방침이다.

윤 당선인 선거대책본부의 경제정책본부장을 맡은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올해 확정된 예산 604조원 중 한국판 뉴딜 등 비효율적인 지출 10%를 줄여 30조원을 마련하고 초과세수, 기금여유분, 예비비 등을 활용해 추경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도 부족하면 적자국채를 발행한다는 계획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11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50조원을 전부 적자 국채를 발행해 마련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채권시장 전문가들은 윤 당선인의 공약 중 재정준칙 도입과 민간 주도 경제정책 추진 등도 채권시장에 우호적인 재료로 꼽았다. 윤 당선인은 지난 1월 “새 정부 출범 1년 내 재정준칙을 마련해 국가채무를 관리하겠다”고 밝혔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예산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경우) 추가 추경에 따른 실질적인 국채 발행 규모는 10조원 내외로 추정된다”며 “윤석열 당선인은 새 정부 출범 1년 내 책임 있는 재정준칙을 도입하고 비효율적인 정부지출을 줄여 국가채무를 관리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국채발행이 크게 증가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고 말했다.

차기 윤석열 정부도 확장적인 재정 정책을 예고했지만, 이재명 후보의 공약과 비교하면 보수적이라는 점에서 채권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란 진단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차기 윤석열 정부가 덜 확장적인 재정정책과 덜 매파(hawkish·긴축 선호)적인 통화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인상 속도가 늦춰지면 국채금리 상승세도 약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도 “윤 당선인이 민간 주도의 경제정책을 강조했고, 재정준칙을 추진하겠다고 한 점을 감안하면 시장금리 상승 압력이 상대적으로 덜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다만 국회와 협상 과정에서 적자국채 발행규모가 예상보다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 과반을 차지하는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서 추경 통과는 물론 재정준칙 도입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세출 구조조정을 통해 추경 재원을 마련하는 계획도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한국판 뉴딜과 같은 사업의 예산을 일부 삭감하더라도 이 방법으로 50조원에 가까운 재원을 마련하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