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4일 “3%대의 물가 오름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재정 확대는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되는 와중에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등 확장적인 재정 정책을 이어가는 데에 대한 우려다.

이 총재는 이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2월 통화정책방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3%대의 물가 오름세가 이어지는 상황에 재정 확대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자극하는 것은 아닌지 눈여겨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만 이 총재는 이번 1차 추경이 전반적인 경기 진작이 아닌 소상공인 피해 지원의 성격이 강하다보니, 물가 영향은 다소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함께 내놓았다.

다음달 31일로 임기를 마치는 이 총재는 “총재 공백 기간은 아주 최소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도  말했다. ‘대선과 신임 총재 지명 일정이 겹쳐 총재 공백이 길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한 답변이다. 이 총재가 임기를 마치고 4월 1일부터 공백 없이 신임 총재가 취임하려면, 3월 초에 총재 후보가 발표되고 청문회를 거쳐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한국은행

이 총재는 총재 공백이 있더라도 금통위 위원들이 정책을 잘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통화 정책은 합의체 의결 기구인 금통위가 자율적, 중립적으로 경제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책을 운영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며 “총재 공백이 있더라도 통화 정책이 멈추거나 실기할 수 있다는 걱정은 기우(杞憂)”라고 했다.

그는 또 대선 후보 토론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제기한 한국의 기축통화국 가능성에 대해 “경제적인 의미를 설명하기에는 정치 이슈화가 돼 버린 사안”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다음은 이 총재와의 일문일답.

-한국의 기축통화국 가능성이 대선 후보 토론에서 나왔다. 원화의 경쟁력을 높일 방안은. 기축 통화국 가능성에 대한 의견은.

“원론적으로 말하면, 대외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해야 한다. 기초 경제 여건을 튼튼히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원화가 통용되도록 하려면 자본시장, 외환시장 발전이 필요하다. 인프라를 개선하고 외환 자유화, 자본시장 자유화를 위해 걸림돌이 되는 제도적인 미비 사항을 개선해야 국제 결제에서 원화가 널리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기축통화국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겠냐는 질문은,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언급하기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제적인 의미를 설명하기엔 정치 이슈화가 돼 버렸기 때문이다.”

-기축통화국이 될 수 있는 한국인 만큼 국가채무비율이 100%까지 치솟아도 된다는 주장에 동의하나.

“위와 똑같은 질문이다. 기축통화국이나 국가채무비율 적정 수준도 정치 이슈화돼 버렸다. 아무리 경제적인 측면에 입각해서 설명해도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낼 수 있어 답변하지 않겠다.”

-국고채 3년물 금리가 2.3%를 넘어섰는데, 채권금리 수준이 오버슈팅일까. 국고채 단순매입을 적기에 추진한다고 했는데 올해 어느정도 규모로 단순매입할 예정인가.

“미국 통화 정책의 기조가 크게 바뀌고, 연초 추경 논의가 작용해 단기간에 국고채 금리가 급등한 것은 사실이다. 국고채 단순 매입에 대한 입장은, 금리의 기조적 흐름을 바꾸는 게 아니라 외부 이슈, 대외 충격에 의해 국내 채권 시장이 급변동하는 쏠림 현상이 발생할 때 시장 안정화 차원에서 실시한다는 것이다. ‘적기 추진’이라는 말은 시점을 미리 못박은 게 아니라 금융 불안이 예기치 못하게 단기간에 발생했을 때를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에서 국채를 발행한 후, 자국 채권 시장이 성숙하지 못해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한 사례를 언급한다. 이때 환율 상승이나 변동성이 적었고, 한국에서도 비슷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동의하나.

“우리나라는 그들 나라에 비해 채권 시장이 규모도 크고 발달해 있다. 국내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외국인 투자 수요가 우리는 상당히 탄탄하다. 그렇지만 국채 매입은 시장안정화 차원에서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1월 이후 물가오름세가 대폭 확대되고, 주요국 통화 정책이 가속화되고 있어 시장에서는 올 연말 기준금리 1.75~2% 기대가 형성되고 있는데 적절한지.

“시장의 기대가 합리적인 경제 전망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장이 기준금리 수준을 기대할 때 올해 우리의 성장세, 물가 전망, 주요국 통화정책의 방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기대할 것이다. 기대의 밑바탕이 되는 성장, 물가, 대외 여건 흐름이 시장이 예상하는 것과 저희들이 보는 것과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 시장이 저희들과 같은 경제 흐름을 예상하고 기준금리를 예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물가전망이 너무 큰 폭으로 변했다.

“지난 11월에 전망한 후 3개월 사이에 물가 측면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때에 비해서 최근 짧은 기간 동안에 물가 상승 확산 정도가 저희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크고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처음에 공급 측 요인에 의해 물가가 올랐지만 그런 물가 상승 정도가 공급 측 물가가 아닌 근원물가까지 상승압력이 확대되는 점을 감안했다. 국제유가 상승세가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예상보다 큰 폭으로 확대돼 큰 폭으로 물가 전망을 올렸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 대외 여건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겠나.

“대내외 여건의 변화가 국내 경기 흐름을 크게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대내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다보니, 통화정책 운용함에 있어서 고려할 요인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변이바이러스의 확산세가 상당히 급속하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사실상 어떻게 전개돼 영향을 줄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급 병목도, 원자재 가격 오름세도 생각보다는 장기화되고 있다. 물가는 공급측 요인 외에 수요측 영향도 커져서 상승압력이 생각했던 것보다 크게 확대되고 있다.

통화 정책 완화 정도를 계속 줄여나가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경기와 물가 흐름, 금융 불균형 위험 등 다 감안해보면 완화 정도를 지속적으로 조정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는 게 금통위 다수의 의견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에 전면전이 발생했을 때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전면전으로 갈 경우 충격이 크지 않을 수 없겠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양국이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 곧바로 원자재 수급 불균형이 나타날 것이고, 국내 물가상승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서방에서 경제 제재 수위를 상당히 높이면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고 국내 생산과 수출이 위축될 것이다.”

-경제성장률은 그대로인데 물가 전망치는 많이 올렸다. 물가 상승세가 소비 회복을 제약하지 않을 것으로 보나.

“물가는 상승하고 소득 증가가 수반되지 않으면 소비자의 실제 구매력이 약화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의 물가 상승은 공급 요인도 있지만 수요 늘어나는 것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방역당국 예상대로 오미크론이 정점을 지나고 방역 조치가 점차 완화되면 소비는 곧바로 기조적인 회복 흐름을 되찾을 것이다.”

-현재의 금리 수준이 여전히 완화적이라고 보나.

“여전히 완화적으로 보고 있다. 물가가 많이 올랐으니 완화 정도는 더욱 커졌다고 본다. 긴축이 아니라고 보는 것은 확실한 입장이다. 물가 오름세도 높고 금융 불균형 위험도 있어서 지속적으로 완화 정도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게 금통위 다수 의견이다.”

-최근 경제학계에서 한국이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초입 단계라는 경고를 내놓았다.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할 상황은 아니다. 최근에 물가 오름세가 높긴 하지만 성장 흐름을 보면 우리 수출 호조, 소비의 기조적인 회복 흐름에 힘입어서 올해는 몰론이고 내년에도 잠재 수준을 웃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