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를 ‘수소 생태계’ 원년으로 삼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가운데,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소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시장성과 기업들의 투자가 관건인데, 현대차, 벤츠, 도요타 등 완성차 업체를 중심으로 수소 기술 개발을 중단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수소 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전기차로 방향을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지난 2월 세계 최초로 재정했다고 홍보한 수소법은 6개월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7일 인천광역시 서구 현대모비스 수소연료전지공장 투자 예정지에서 열린 수소경제 성과 및 수소 선도국가 비전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재부

◇ 현대차, 벤츠, 도요타 등 車업계, 수소개발 잇따라 중단... “시장성 부족”

3일 자동차 업계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최근 현대차는 제네시스 수소차에 탑재하기 위한 3세대 수소연료전지의 개발을 일시 중단했다. 연료전지는 수소차의 심장으로, 내연기관 차에서 엔진 역할을 맡는다. 현대차는 지난달 수소연료전지 담당 조직을 개편하면서 이미 해당 내용을 회사 내부적으로 공유했다.

현대차가 이러한 결정은 내린 것은 시장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억원 기재부 차관은 지난달 31일 제42차 혁신성장 전략점검회의에서 “최근 3년간 수소차 보급 규모는 17배로 늘어 세계시장 점유율 1위(51.7%)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현대차의 수소차 넥쏘가 출시된 이후 지난해와 올해 전 세계 시장 점유율은 1위다.

하지만 전체 완성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수소차 시장 규모가 워낙 작기 때문에, 통계가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올해 전 세계 완성차 시장 규모는 8400만대 규모다. 여기에서 수소차 시장은 1만4700대로 전체의 0.0175%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지난해 1월~11월까지 현대차 판매한 넥쏘는 7900대 수준이다. 이 가운데 7341대(93%)가 내수 판매다. 결국 해외 수출분은 500여대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넥쏘가 국내에서만 판매량이 집중되는 것은 정부의 관용차 구입과 보조금 지급을 비롯해, 수소충전소 설치 등 인프라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해외에서는 현대차를 위해 정부가 수소충전소를 설치해주는 것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제네시스 GV80 수소전지 콘셉트 /현대차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 “사실상 정부의 도움 없이는 현대차의 넥쏘의 판매가 이뤄지기 힘든 구조”라며 “배터리 기술이 고도화 되면서 전기차 시대가 더 오래 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수소차로 가는 게 맞지만 수익이 나올 수 있는 생태계가 만들어지기 까지는 오랜시간이 걸릴 수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수소차 사업을 중단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라고 했다.

현대차의 수소차 개발 출발점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차는 이때부터 연료전지 개발 조직을 신설해 수소전기차 개발에 착수했고 막대한 개발비가 투입됐다. 예를 들어 약 7000만원짜리 넥쏘가 연간 1만대 판매된다면 시장은 7000억원 규모다.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이 5~6%인 점을 감안하면 넥쏘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350억원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기에 수소차 초기 보급을 위해 마진을 줄이고 충전소 인프라 확장 등 사업비를 감안하면 사실상 미래를 위해, 적자를 보면서 사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러한 추세가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양산을 목표로 개발한 수소 SUV인 ‘GLC F-CELL’ 생산을 지난해 중단했다. 허버트 디스 폭스바겐 최고경영자(CEO)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폭스바겐이 만든 수소전기차를 (소비자가) 보게 되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며, 개발 포기 의지를 분명히 했다. 현대차와 함께 수소차에 적극적이었던 도요타 역시 최근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달 14일 고급 브랜드 렉서스는 2035년 100% 전기차만 팔겠다고 발표했다. ‘클래리티’라는 수소 승용차를 출시해 ‘3대 수소차 강자’에 포함됐던 혼다 역시 2040년까지 100% 전기차 회사로 전환한다고 발표하면서 수소차 개발을 사실상 접었다.

◇ 로드맵 목표도 달성 못했는데, 정부는 ‘수소 원년’... “수소경제, 속도 조절 필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정부는 수소 경제에 올인하는 분위기다. 기재부가 지난달 20일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에서 ‘수소’라는 단어가 총 54군데(상세본 기준) 등장했다. 당장 정부는 내년 수소차 보급량을 현재의 3배 가까이 늘리기로 했다. 지난달 기준 누적 1만9000대 수준인 수소전기차는 내년 5만4000대로 확대한다. 충전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전기충전기는 16만기까지, 수소충전소는 310기까지 확충한다. 하지만 넥쏘 이후 신차가 없는 상황에서 수소차 확산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또 정부는 수소경제 활성화를 올해 경제정책의 한 축으로 설정했다. 수소 분야 매출과 연구개발(R&D) 투자 비중 등을 평가해 지정할 수소 전문기업 숫자를 2025년까지 100개로 늘리고, 수소 버스·화물차 중심의 교통물류 체계 지원을 위한 수소교통복합기지와 화물차용 수소충전소 확충사업을 실시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수소 관련 기술을 국가 경제‧안보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할 국가전략기술로 지정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수소기술 인재 육성을 위해 2030년까지 수소학과 20개, 수소융합대학원 5개를 신설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수소경제 비전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수소 생태계에서 수소차는 대중화를 위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수소 생산 담당하는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결국 수소 소비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수소차가 없이는 수소경제 구축이 어렵기 때문이다. 비싼 수소가격도 문제다. 정부는 2019년 1월 수소경제 로드맵을 통해 내년 목표 수소가격을 kg당 6000원으로 낮추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현재 가격은 로드맵 발표 당시(8470원)와 큰 차이가 없는 8430원이다. 수소충전소도 목표대로라면 내년에 310개소가 운영돼야 하지만, 현재 목표치의 38%에 불과한 117개소 뿐이다.

여기에 수소법 개정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업계는 청정수소의 범위에 그린수소 외에 블루수소까지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린수소는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물을 분해해 만들어진 수소로 이산화탄소 발생이 거의 없는 청정에너지다. 그러나 만드는 과정이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드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여당과 시민단체가 반발하면서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전기차와 배터리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전기차 시대가 장기화되는 반면 수소차의 확산 속도도 늦어질 수 밖에 없다”며 여기에 하이브리드차의 연비나 친환경성 기술까지 좋아지면서 수소차의 필요성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며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수소차를 못만들어서 시장에 참여하지 않는게 아니다. 그만큼 시장성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소기술 확보를 위한 선제적인 정책 추진에는 공감하지만, 전환 비용과 시장성 측면에서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지 정부가 점검하고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