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사승률이 10년 만에 3%대로 올라서면서 고(高)물가 기조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국제유가 급등, 글로벌 공급망 차질이 지속되는 가운데 ‘위드 코로나(with corona·단계적 일상 회복)’로 경제 활동이 재개되면서 수요측 물가 상승 압력까지 커진 영향이다.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 우려에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포함한 통화 긴축에 속도를 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 정부 ‘물가 하반기에 진정’→‘불확실성 크다’ 입장 선회

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물가 전망을 둘러싼 당국의 시각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당초 정부는 2%를 웃도는 높은 물가 상승률이 공급 측면에서 기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평가했지만, 최근에는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까지 더해지면서 고물가 기조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을 내놓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월 이후 6개월 연속 2%를 상회하는 오름세를 나타냈고, 10월에는 3.2%까지 치솟았다. 배럴당 80달러까지 치솟은 국제유가와 전 세계를 강타한 공급망 병목현상에 따른 비용 상승 등이 물가를 밀어올린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지난 8월까지만 해도 “농축수산물·석유류 등 공급측 요인이 물가 상승을 주로 견인한다”는 입장이었다. 공급 측 물가 상승 요인이 해소되면서 하반기 들어 물가는 진정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정부의 입장에도 변화가 생겼다. 정부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2%를 기록한 지난달 “11월에도 국제유가 상승세와 농축수산물·개인서비스 기저효과 등 상방 요인이 상존한다”며 “하방 요인보다 상방 요인이 더 많은 것 같다”고 공식 인정했다. ‘일시적인 물가 상승’이란 문구는 없어졌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7%포인트(p) 끌어올린 지난해 통신비 지원 기저효과 중 0.6%p가 이달이면 소멸하는 데도 물가 상승률이 완화될 것이란 표현 대신 ‘불확실성이 크다’라는 평가를 내렸다.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이 시작된 1일 낮 광주 북구 용봉동 한 음식점에서 12명 모임을 가진 식당 이용객이 음료수 잔을 부딪치고 있다.

◇ 한은 “물가 상승세 예상보다 오래 지속”

한국은행도 지난달 지속적인 물가 상승세를 경고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연이어 발간했다. 한은은 지난달 27일 ‘우리나라와 미국의 주요 물가 동인 점검’ 보고서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점차 높아지는 가운데, 글로벌 공급 병목 현상의 국내 파급, 방역체계 개편에 따른 수요 증대 등으로 높은 물가 오름세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에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내년 상반기로 예상했던 물가 안정 시점이 내년 하반기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김웅 한은 조사국장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당분간 2%를 상당폭 상회하는 수준에서 등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에 ‘위드 코로나’ 시행과 함께 소비가 회복되면서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은은 ‘위드 코로나’로 경제주체들의 이동성이 10% 늘어나면 대면서비스 카드지출액이 5%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입법조사처도 최근 ‘물가 상방 리스크 요인의 주요 내용 및 쟁점’ 보고서에서 “세계 경제의 빠른 회복은 유가 및 해상운임 등 물류비용 상승을 일으키고 있는 데다 공급 병목현상 등으로 물가는 더욱 상승할 수 있다”면서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우리나라의 특성 때문에 미국, 중국 등 주요국들의 물가 상승 압력이 국내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 고물가 우려에 한은, 연속 금리인상 추진할까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한국은행의 물가 안정 목표인 2%를 웃돌면서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낼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달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한 가운데 한은이 내년 1월 연속 금리인상에 나설지 여부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한은은 물가 안정과 가계부채 증가 억제 등 금융불균형 완화를 위해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일각에서는 부작용을 우려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4일 ‘민간부채 국면별 금리 인상의 거시경제적 영향’ 보고서에서 “고부채 국면에서 금리를 인상하면 평상시보다 경제성장률이 더 큰 폭으로 떨어진다”면서 한은의 금리 인상에 반기를 들었다.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낸 김용범 금융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최근 ‘팬데믹 이후 세계 경제와 금융의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포스트 코로나 경기 회복에 따른 일시적인 물가 상승이 아니라 상당히 장기간 물가 오름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통화 긴축이 자산시장 불안정으로 이어져 경기를 위축시키고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인플레이션이 향후 거시경제와 금융안정을 위협할 핵심 변위 요소가 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