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엔터업계에선 하이브(352820) 산하 레이블(label·소속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쏘아 올린 ‘아일릿 짝퉁 논쟁’이 화두다. 아일릿은 지난 3월 말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 빌리프랩이 내놓은 신인 걸그룹이다.

민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모회사 하이브와의 경영권 갈등 시발점을 자신이 아일릿을 ‘뉴진스 짝퉁’이라고 주장한 데 따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아일릿의 콘셉트·안무·의상이 어도어의 대표 걸그룹인 뉴진스와 복사판이라는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산업계는 그러나 아일릿이 꽤 성공적인 결과물이라고 보고 있다고 한다. 최근 만난 엔터업계 관계자는 “아일릿은 민희진이라는 스타 제작자 없이도 걸그룹의 성공 방정식을 시스템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라면서 “하이브가 하고 싶어 하는 엔터테인먼트업의 산업화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실제 빌리프랩을 이끌고 있는 김태호 대표의 이력은 아이돌 제작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직전에 ‘풀러스’라는 모빌리티(이동수단) 스타트업 창업자이기도 했다.

문제는 이번 ‘민희진 사태’에서 보듯 제작자(크리에이터)와 경영자 간 좁히지 않는 간극이다. 이는 민 대표의 2차 기자회견에서도 고스란히 확인됐다.

지난달 31일 민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경영을 프로듀싱(제작)과 분리해 전문 경영인이 맡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전문’이라는 말에 속는 것”이라면서 “엔터업은 사람을 가지고 하는 일이며, 어떤 프로덕트(물건)를 만들기 위해 공장을 돌리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업에 대한 이해가 기본이다. 프로듀싱과 경영은 분리돼선 안 된다. 난 경영에 소질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YG엔터테인먼트(와이지엔터테인먼트(122870))나 JYP엔터테인먼트(JYP Ent.(035900))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는 분위기다. 이들 회사는 여전히 양현석·박진영이 경영은 물론, 제작에도 깊이 관여하며 하이브식(式) 업의 시스템화에 선을 긋고 있다.

하이브는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멀티 레이블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멀티 레이블은 게임업계가 도입한 멀티 스튜디오 체제를 차용한 것이다.

여러 레이블의 경쟁·생산을 통해 성공적인 일부 지식재산권(IP)을 만들어내고, 이를 무한히 활용하면서 돈을 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수단이다. 뜨는 아이돌을 만들지 못하는 레이블은 없애거나 성공한 레이블에 흡수시키는 방식으로 리스크(위험 요인)를 낮출 수도 있다. 넥슨 출신의 박지원 대표가 방시혁 의장을 대신해 하이브를 이끌고 있는 것도 이를 성공적으로 벤치마킹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안정화하기까지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민 대표와의 갈등을 통해 확인됐듯, 계열사 경영 통제가 전혀 안 되는 상황이나 데뷔 1년 반 만에 미국 대형 음악 축제 ‘코첼라’에 오른 걸그룹 르세라핌(하이브 산하 레이블 쏘스뮤직)이 라이브 실력으로 논란을 일으킨 것이 단적인 예다. 공장식 시스템의 한계가 여러 번 반복된다면, ‘제2의 민희진 사태’는 재현될 수밖에 없다.

최근 창업자 겸 총괄 프로듀서였던 이수만 체제의 막을 내린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041510))도 하이브와 유사한 멀티 프로듀싱 체제를 선언했다.

‘바람의 나라’ ‘리니지’ 같은 걸출한 게임을 만든 송재경이라는 천재 개발자가 자취를 감추고 시스템으로 돌아가며 돈을 찍어내는 게임산업처럼 엔터업계도 그 뒤를 따를 수 있을까. 멀티 레이블의 부작용을 빠르게 수습하면서 규모를 키워나가는 것이 관건이다. 두 회사가 얼마만큼의 시행착오를 겪을지 그 실험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