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상무·하이닉스반도체 부사장 출신인 최진석씨가 ‘30나노 이하 D램 제조 공정’을 중국에 유출한 혐의로 지난 5일 구속됐다. 이 공정은 ‘국가 핵심 기술’로 지정돼 있다. 해외로 유출되면 국가 안전 보장, 국민 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최고급 기술이라는 뜻이다.

최씨의 혐의는 역대 기술 유출 가운데 최대 규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술이 중국으로 빠져나가면 국내 산업에 4조원의 손실을 끼칠 수 있다는 추산이 나왔다.

문제는 심각한 기술 유출 사범을 기소해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범죄 수익을 국고로 환수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사법 체계가 기술 유출에 따른 피해 액수를 산정하는 시스템을 아직까지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법원이 기술 유출 사범에 대해 범죄 수익 환수를 위한 추징을 선고한 사례가 단 한 건도 나오지 않고 있다. “범죄 수익이 정확하게 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형벌의 일종인 추징을 선고하면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같은 이유로 검찰도 기술 유출 사범을 상대적으로 처벌이 약한 죄목으로 기소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한 부장검사는 “기술 유출 피의자의 범죄 수익이 5억원, 50억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해 중벌을 받게 할 수 있지만 범죄 수익 규모를 산정하는 기준이 없으니 형량이 낮은 일반 배임 혐의로 기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반면 미국은 기술 개발에 투입된 비용, 기술의 시장 가치, 예상되는 미래 수익 등에 근거해 피해 액수를 산정하는 체계가 마련돼있다고 한다. 법원도 산정된 피해액에 따라 형량을 정한다. 피해액이 큰 경우 최대 징역 33년 9개월을 선고하고 500만달러를 추징할 수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기술의 시세와 해당 기술로 올린 매출 등을 고려해 피해액을 산정하고 이를 양형에 반영한다. 이에 따른 몰수·추징도 이뤄지고 있다.

기술 유출 사건 수사를 담당하는 일선 경찰과 검사들은 우리나라도 피해액 산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빼앗긴 기술이 얼마짜리인지를 정해야 이에 걸맞은 형사 처벌과 범죄 수익 환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준 마련에 대한 논의는 별다른 진척이 없다고 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반도체 강국’이라는 명성을 다른 나라에 빼앗겨도 할 말이 없게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