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정부에서 계속 강하게 밀어붙이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조직이 통째로 옮겨 간다는 데 직원이 별수 있나요. 그냥 따라가야죠.”

최근에 만난 한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 논란과 함께 불거진 핵심 금융 기관의 부산 이전설에 대해 현실 가능성은 낮지만, 강행한다면 막을 방법을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업무 비효율성, 경쟁력 저하 등 각종 부작용을 근거로 제시해도 정부 정책으로 추진되면 기관으로선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산은 본점을 부산으로 옮기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산은 안팎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이전이 확정되다시피 하면서 수출입은행 등 다른 국책은행, 금융공공기관은 물론 심지어는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의 이전 가능성까지 나온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인프라를 분산하고, 지역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방향 자체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큰 성과는 없었지만, 역대 정부들도 매번 균형발전을 외쳐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역의 경제 규모는 52.5%로 우리나라 전체 절반을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의 경제 규모는 경기도의 5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수도권 과밀과 혼잡으로 파생되는 주거, 인구, 교육 등 사회적인 문제를 고려하면 부산을 금융도시로 키워보겠다는 새 정부의 의지는 설득력을 더 얻는다. 산은 같은 금융기관은 손에 꼽히는 양질의 일자리를 생산한다. 청년층의 이탈과 이에 따른 고령화로 사라지는 지방 도시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좋은 일자리라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금융업 특성상 단순히 기관 몇 개가 거처를 옮긴다고 그 지역이 어느 순간 허브 역할을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금융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그 자체만으로 존재할 수 없다. 가계, 기업, 기관 등 자금이 필요한 경제 주체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금융업인데 우리나라는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거의 대부분의 경제 활동이 수도권에서 이뤄지고 있다.

설령 본점이나 본부 소재지를 부산으로 이전하더라도 비용과 네트워크 등 여러 가지 실효성을 따져볼 때 주요 업무는 기존처럼 서울에서 도맡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이런 식이라면 결국 불필요하게 잦은 출장과 순환 근무에 따른 피로감은 기관의 구성원들이 떠안고, 금융도시로서 부산의 경쟁력이 키운다는 새 정부의 계획은 예상만큼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

부산국제금융센터(BIFC)로 이전해 있는 한국거래소, 한국예탁결제원 사례만 봐도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해당 기관들의 본사를 부산이라고 인지하지 못할뿐더러 실제 그 역할을 서울에서 하고 있는 게 맞다. 지난해 거래소는 한 해 동안 총 10번의 임원들이 참석하는 이사회를 개최했는데, 서울이 아닌 부산 본사에서 회의가 진행된 건 6월에 진행된 제5차 회의 한 번뿐이다. 올해 열린 두 번의 이사회도 서울 사옥에서 열렸다.

무늬만 본사일 뿐 지방 본부 수준의 기능을 하다 보니, 젊은 직원들 사이에선 자연스레 부산 근무를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 심지어 금융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 사이에서까지 아무리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금공이라고 하지만 서울보다 부산 근무 비중이 높다면 일부 조건이 떨어지더라도 서울에 있는 다른 근무지를 선택하겠다고 한다. 2030세대의 지방에 대한 인식은 생각보다 더 인색한 상황이다.

게다가 두 팔 벌려 기관들을 환영하고 있는 부산이라는 도시 역시 BIFC로 얻은 성과가 명확하지 않다. 부산의 국제금융센터지수(GFCI)는 세계 20위권에 7년째 진입하지 못하며,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는 중이다. 서울은 현재 12위이며, 부산은 30위다. GFCI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수로 뉴욕, 런던, 홍콩 등 세계 주요 금융도시들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매번 치열하게 경쟁한다.

윤 당선인의 구두 발언에 이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에서 산은 부산 이전 계획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하면서 금융권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공약을 지킨다는 명분을 앞세운 빠른 추진력은 누가 뭐래도 윤 당선인의 가장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를 건너뛴 채 속도만 내다가 이전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까지 반감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