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서울 강남의 한 빌딩에서 10대 청소년이 투신하는 과정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생중계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SNS 게시판 차단을 요청했지만, 위원회는 법률 자문과 불법 게시물에 대한 추가 파악이 필요하다며 의결을 보류했다. 경찰은 게시판 운영사에도 게시판 폐쇄를 요청했지만, 문제가 된 게시글을 삭제하고 관리를 강화하겠다며 경찰의 요청을 거부했다.

해당 SNS는 익명성을 강점으로 가진 국내 최대 규모의 커뮤니티 사이트다. 하루 평균 80만 건이 넘는 글이 올라오고, 220만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다고 한다. 다만 이런 익명성이 디지털 범죄를 양산할 수 있는 요인이 되고 있는데, 문제가 된 게시판은 우울증 커뮤니티로서 극단적 선택을 유발하는 정보를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불법적인 콘텐츠에 대한 플랫폼 기업의 책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2020년 n번방 사건 이후 포털 등 디지털 성범죄를 포함해 불법 촬영물 등의 온라인 유포 사전 방지를 위해 기술적, 관리적 조치 의무를 부담하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과 정보통신망법을 개정·시행하고 있다. 조치 의무의 내용으로 불법 촬영물 등으로 의심되는 정보를 상시적으로 신고·삭제 요청을 할 수 있는 기능을 마련할 것, 불법 촬영물 등에 해당하는 검색 결과의 송출을 제한하는 조치, 불법 촬영물 등에 해당하는 정보의 게재를 제한하는 조치, 불법 촬영물 등을 유통할 경우 삭제·접속 차단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치와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이용자에게 미리 알리는 조치 등이다.

유럽연합(EU)의 경우에도 강력한 법안이 준비되고 있다. 오늘 8월 시행 예정인 디지털서비스법(DSA)이 그것이다. 이 법은 ‘오프라인에서 불법인 것은 온라인에서도 불법’이란 원칙에 근거해 안전하고 표현의 자유와 디지털 비즈니스 기회를 보장하는 온라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4월 25일 동 법의 규제를 적용받는 19개 서비스를 지정했다. 구글 검색과 구글 맵, 구글 쇼핑, 유튜브, 구글 플레이, 페이스북, 트위터, 틱톡, 인스타그램, 애플 앱스토어, 아마존, 알리바바, 알리익스프레스 등 유럽 내 이용자가 월 4500만 명 이상인 19개다. 이 기업들은 불법 콘텐츠를 인지하면 신속하게 제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며, 이를 위반하면 매출의 최대 6%에 달하는 과징금이 부과된다.

그 외 이용자의 인종·정치적 견해·성적 취향 등 민감정보를 기반으로 하거나 미성년을 대상으로 한 타깃 광고는 금지된다. 또 추천에 사용되는 알고리즘을 포함하여 다양한 문제에 대한 온라인 플랫폼의 투명성을 측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플랫폼 사업자는 플랫폼 추천 시스템의 개인 최적화 콘텐츠 구성 방식에 대한 설명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개인 프로파일링 이외의 대체 추천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

그동안 구글, 메타, 트위터 같은 미국의 플랫폼 사업자는 플랫폼상 게시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1996년 미국 통신품위법(Communications Decency Act)의 적용을 받았다. 동 법 제230조는 “양방향 컴퓨터 서비스의 제공자나 이용자가 다른 정보 콘텐츠 제공자가 제공한 정보의 발행자나 발화자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no provider or user of an interactive computer service shall be treated as the publisher or speaker of any information provided by another information content provider)”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콘텐츠 중개 작업을 하는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서는 ‘발행자(publisher)’에 준하는 의무를 부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이다. 이 규정으로 인해 플랫폼 사업자들은 불법 콘텐츠 유통에 따른 책임 부담 없이 사업을 영위할 수 있었다. 또 다른 긍정적인 측면은 동 조항이 이용자의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데도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이다.

다만 동 조에 대해서는 플랫폼 사업자들이 불법 콘텐츠와 혐오 발언, 가짜 뉴스 등을 방치할 수 있게 하는 법적 면죄부로 악용되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에서도 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작년 4월 하원에서는 소셜미디어 기업에 대한 광범위한 면책을 중단하고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 접근을 보장하는 조항을 통신품위법에 추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21세기 표현의 자유법(안)’이 제안되기도 했다. 어쨌든 미국의 플랫폼 사업자들은 디지털 서비스 법에 따라 가짜 뉴스, 불법 콘텐츠를 제거하는 것은 물론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게 됐다.

이제 인터넷의 광범위한 확산과 이로 인한 인터넷상에서 이뤄지는 무수한 각종 불법 행위를 국가의 힘만으로는 통제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플랫폼이 온라인 공간을 운영함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얻는다는 점과 현실적으로 불법 콘텐츠를 삭제하는 기술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플랫폼에도 일정한 조치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입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 등장한 자살 관련 사이트는 인간의 생명권에 관한 것으로 이는 표현의 자유 등 다른 가치에 우선한다고 봐야 한다. 다행히 한국은 이미 불법 콘텐츠에 대한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에 대한 법적 규제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 실제 불법 콘텐츠 심의 관련 기준도 양적 기준 외에 질적 기준도 도입하는 등 보다 현실에 맞도록 개정해야 할 것이다. 플랫폼 사업자도 이용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보다 강화된 모니터링과 사후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