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술 미래산업 창업주 겸 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사장이 13일 별세했다. 정 전 이사장은 평생 모은 돈을 KAIST에 기부하고 뇌 과학 연구를 위해 써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KAIST

벤처계의 대부(代父)이자 수백억원의 자산을 사회에 환원한 정문술(86) 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제12대 이사장이 13일 별세했다.

정 전 이사장은 공무원 생활을 하다 1983년 반도체 검사장비 업체인 미래산업을 세웠다. 전 세계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는 흐름을 읽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 성공한 것이다. 미래산업은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1999년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하기도 했다. 1990년대 말에는 10여개에 달하는 벤처기업을 세우거나 출자하면서 벤처 대부로 불렸다.

그는 2001년 혈연관계가 없는 후임자에게 미래산업을 물려주면서 한 번 더 화제를 모았다. 당시만 해도 전문경영인보다는 자식에게 회사를 물려주는 게 당연한 것처럼 인식됐는데, 과감하게 기존 관념을 깬 것이다. 정 전 이사장은 2004년 한국능률협회가 선정한 ‘존경받는 경영인’에 이름을 올렸다.

정 전 이사장은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2001년 KAIST에 300억원을 기부했다. KAIST는 정 전 이사장이 기부한 300억원으로 교내에 정문술 빌딩을 짓고 국내 최초로 융합학과인 ‘비이오 및 뇌공학과’를 개설했다.

정 전 이사장은 2014년에는 추가로 215억원을 KAIST에 기부했다. 정 전 이사장은 당시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고 뇌 과학 분야를 연구하는 데 써 달라”고 당부했다. KAIST는 정 전 이사장이 추가로 기부한 돈으로 ‘정문술 기금’을 만들고 미래전략대학원 육성과 뇌 인지과학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정 전 이사장이 KAIST에 기부한 돈은 515억원으로 국내에서 개인이 대학에 낸 기부금으로는 당시 두 번째로 많았다.

정 전 이사장이 KAIST와 인연을 맺은 건 이광형 KAIST 총장을 만나면서다. 이 총장은 1999년 방영됐던 TV 드라마 ‘KAIST’에서 안정훈 배우가 연기한 괴짜 교수의 실제 모델이다. 이 총장은 1996년 정 전 이사장을 찾아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겠다고 자청했고, 이 일이 인연이 돼 정 전 이사장이 2001년 KAIST에 거액을 기부했다.

그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하루에도 12번씩 마음이 변하더라”며 “나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미래를 개척하는 인생 여정에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게 돼 기쁘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북 임실 출신인 정 전 이사장은 익산 남성고와 원광대 종교철학과를 졸업했다. 모범납세자 철탑산업훈장, 과학기술훈장 창조장 등을 받았다. 슬하에 2남 3녀를 뒀다. 빈소는 건국대병원, 발인은 15일 오전 9시, (02)2030-7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