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한진만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과 함께 미국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글로벌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모이는 비공개 네트워킹 무대에 삼성 파운드리 수장이 동행한 것이다.
8일 조선비즈 취재에 따르면 이 회장은 최근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리는 '앨런앤드컴퍼니 선밸리 콘퍼런스' 참석을 위해 출국하면서 한 사장과 동행했다.
선밸리 콘퍼런스는 미국 투자은행 앨런앤드컴퍼니가 매년 여는 비공개 행사다. 글로벌 정보기술(IT), 미디어, 금융업계 거물들이 모여 '억만장자들의 여름 캠프'로 불린다. 올해 행사에도 팀 쿡 애플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이사회 의장 등 빅테크 핵심 인사들이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사장은 지난해 말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에 오른 뒤 삼성 파운드리 사업 재건을 맡고 있다.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공급자에 머물지 않고, 빅테크의 자체 AI칩 생산 파트너로 들어가려는 전략적 행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AI 서버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빅테크들은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 AI 가속기와 주문형반도체(ASIC) 개발을 확대하고 있다. 구글, 아마존, 메타 등은 이미 자체 AI 반도체 개발과 데이터센터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함께 보유한 글로벌 종합 반도체 기업이다. HBM과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제품뿐 아니라 AI칩 위탁생산, 첨단 패키징까지 묶어 제안할 수 있다. 파운드리 세계 1위인 대만 TSMC가 첨단 공정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췄지만, 메모리 공급까지 함께 제공하지는 못한다.
한 사장은 D램·플래시 설계,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개발, 상품기획, 마케팅, 전략마케팅실장 등을 거친 반도체 영업·전략통으로 꼽힌다. 2022년부터는 삼성전자 미주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DSA 총괄을 맡아 미국 현지 고객사들과 접점을 넓혔다. 이후 지난해 말 DS부문 파운드리사업부장 사장으로 선임됐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번 선밸리 행보가 이 회장과 한 사장의 '투톱 세일즈' 성격을 띤다고 보고 있다. 이 회장이 빅테크 최고위급 인사들과 신뢰를 쌓고, 한 사장이 파운드리·패키징 협력 가능성을 구체화하는 방식이다. 선밸리 콘퍼런스가 공식 계약 체결 장소는 아니지만, 빅테크 수장들과 장기 협력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자리라는 점에서다.
삼성 파운드리는 현재 반등이 절실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업황 회복과 AI 수요 확대에 힘입어 실적 개선 기대를 키우고 있지만, 파운드리 사업은 여전히 TSMC와의 격차를 좁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선밸리에서 빅테크 수장들과 만나는 것 자체는 글로벌 네트워크 행보로 볼 수 있지만, 파운드리사업부장이 함께 움직였다는 점은 의미가 다르다"며 "삼성이 AI 반도체 시장에서 메모리 공급자에 머물지 않고 빅테크 자체 칩 생태계의 생산 파트너로 들어가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