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노사 교섭에서 네이버 노동조합 간부가, 네이버 노사 교섭에서 카카오 노동조합 간부가 각각 교섭대표로 지정되는 구조를 두고 IT업계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노조 측은 산별노조 체계에서 가능한 교섭권 위임 방식이라고 설명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경쟁사 소속 지회장이 교섭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구조 자체가 민감한 경영 정보 관리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 경쟁사 지회장의 교섭대표 지정… 민감 정보 관리 우려
3일 업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산하 일부 IT업체 지회들은 단체교섭 과정에서 다른 회사 지회장을 교섭대표로 지정하는 방식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카카오지회 교섭에서는 오세윤 화섬식품노조 IT위원장 겸 네이버지회장이 교섭대표로 지정된 것으로 알려졌고, 네이버지회 교섭에서는 서승욱 카카오지회장이 교섭대표 역할을 맡는 방식이 적용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노조 측은 이를 산별노조 체계에서 가능한 교섭 지원 방식으로 보고 있습니다. 개별 지회가 회사와 교섭할 때 산별노조가 교섭권을 위임하고, 경험이 많은 다른 지회 간부가 전략과 실무를 지원한다는 설명입니다. 다른 회사 지회장이 교섭대표로 참여하더라도 교섭 결과를 임의로 결정하는 구조는 아니며, 최종 합의안은 해당 지회 조합원 찬반 절차 등을 거쳐 확정된다는 입장입니다.
업계 일각의 우려는 교섭대표 명단 자체보다 교섭 과정에서 오갈 수 있는 정보에 있습니다. 임금·단체협상에서는 임금 인상률과 복지뿐 아니라 성과급 재원, 실적 전망, 인건비 총액, 채용 계획, 조직 개편 방향, 직군별 보상 전략 등이 직간접적으로 논의될 수 있습니다. 경쟁사 소속 지회장이 교섭대표로 이름을 올리는 구조라면 사측으로서는 교섭 자료의 제공 범위와 관리 방식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카카오와 네이버는 개발자, 기획자, 데이터 인력 등 핵심 인재를 두고 같은 노동시장에서 경쟁하는 대표 플랫폼 기업입니다. 임금 수준과 성과급 기준, 복지 제도, 평가·보상 체계는 인재 유입과 이탈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쟁 요소입니다.
◇ 법적으로는 교섭권 위임 가능
법적으로는 경쟁사 소속 노조 간부가 교섭대표 또는 교섭위원으로 참여하는 것 자체를 곧바로 위법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은 노동조합 또는 사용자로부터 교섭이나 단체협약 체결 권한을 위임받은 자가 위임받은 범위 안에서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 노동조합법 시행령은 교섭권한을 위임할 때 위임받은 자의 성명, 교섭사항, 권한범위 등 위임 내용을 상대방에게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산별노조가 산하 지회 간부나 다른 사업장 간부에게 교섭권한을 위임하는 방식 자체는 법이 예정한 교섭권 위임 구조 안에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이유입니다. 고용노동부 행정해석도 노동조합이 경쟁업체 노조 위원장을 교섭위원으로 선정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거부할 수는 없다고 본 바 있습니다.
다만 고용노동부는 단서도 달았습니다. 경쟁업체 노조대표자에게 교섭권이 위임돼 교섭 과정에서 비공개 내부정보나 경영상 기밀 유출 우려가 커지고, 사회통념상 사용자에게 정상적인 단체교섭의무 이행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교섭 거부가 가능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결국 교차 교섭대표 지정 자체가 곧바로 불법은 아니지만, 정보 접근 범위와 비밀유지 장치는 별도 쟁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 성과급 갈등에 정보 공개 부담 확대
이번 논란은 카카오 노조가 성과급 지급 기준을 놓고 사측과 갈등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불거졌습니다. 카카오 노조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 재원으로 배분할 것을 요구하며 사측과 대립하고 있습니다. 노조는 성과급 산정 기준이 불투명하고, 회사 실적에 비해 직원 보상 수준이 낮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교섭일수록 정보 공개 부담이 커집니다. 성과급은 회사 실적과 직접 연결됩니다. 성과급 재원을 어느 정도 마련할 수 있는지, 올해 영업이익이 얼마나 개선될 수 있는지, 비용 통제는 어느 수준까지 필요한지 등을 설명하지 않고서는 노조를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해당 논의 구조에 경쟁사 지회장이 교섭대표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면, 사측은 핵심 정보를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는지를 두고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노사 교섭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입니다. 임금과 복지뿐 아니라 인력 재배치, 채용 규모, 조직 운영 방향 등도 교섭 과정에서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IT기업의 경우 인공지능(AI) 투자, 클라우드·콘텐츠·커머스 전략, 신사업 인력 배치, 개발 조직 운영 방식 등도 인건비 운용과 조직 운영 방향의 배경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 단체행동 연대와 교섭대표 지정은 별개
산별노조식 교차 지원은 노조 입장에서는 약한 지회의 협상력을 보완하는 장치입니다. 교섭 경험이 많은 간부가 다른 지회를 지원하면 사측과의 정보 비대칭을 줄이고, 유사 업종 내 노동조건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IT업계 노조들도 한 회사에서 파업이나 구조조정 이슈가 발생하면 다른 회사 지회 간부들이 현장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연대 활동을 벌인 사례가 있습니다.
다만 단체행동 연대와 교섭대표 지정은 차원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집회나 피켓 시위에 함께 참여하는 것과, 임금·성과급·사업 전망 등이 논의될 수 있는 교섭 절차에서 경쟁사 지회장이 대표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특히 IT기업은 회사별 실적과 사업 구조, 인재 확보 전략, 직군별 보상 체계가 크게 다릅니다. 개별 기업의 보상 제도와 인력 전략 자체가 경쟁력의 일부인 만큼, 타 사업장 지회장의 교섭대표 지정은 단순한 노조 연대를 넘어 기업 기밀과 이해상충 논란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직접적인 정보 유출 사례가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업계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은 실제 유출 여부보다 구조적 위험입니다. 교섭 과정에서 민감한 정보가 오갈 수 있고, 그 절차에서 경쟁사 소속 지회장이 교섭대표로 지정될 수 있다면 사측은 교섭 자체에 방어적으로 임할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쟁점은 산별노조식 교섭 지원의 정당성만이 아니라 기업 정보 보호 장치를 어떻게 마련하느냐입니다.
김경원 세종대 경영학과 석좌교수는 "경쟁사 소속 지회장이 다른 회사 교섭대표로 지정되는 게 법적으로 허용된다면 향후 중국의 기업 노조 간부가 한국의 삼성전자 노조와 연대해 교섭대표로 들어오고, 이를 기술 유출 통로로 악용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선 고용노동부에 제도 개선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노조의 교섭력 강화라는 명분과 기업의 민감 정보 보호라는 현실적 필요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