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대만 'GTC 타이베이' 일정을 마치고 오는 5일 한국을 찾는다. 지난해 방한이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망 협력에 집중됐다면, 이번 방한은 자율주행·로봇을 아우르는 '피지컬 AI'가 핵심 의제로 부상했다. 특히 황 CEO가 로보틱스 분야에서 한국을 주요 파트너로 언급하면서 LG전자를 비롯해 다양한 국내 기업들과 협업이 예상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황 CEO는 오는 5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할 예정이다. 5일에는 서울 성수동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잇따라 회동하고, 7일엔 잠실야구장 두산 베어스전 시구에 나서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 피지컬 AI에 힘주는 엔비디아, 韓이 부상한 이유는
엔비디아는 이번 GTC에서 피지컬 AI 전용 모델인 '코스모스 3'와 오픈소스 휴머노이드 개발 플랫폼 '아이작 그루트' 레퍼런스 로봇을 공개하며 소프트웨어 플랫폼 구축을 마쳤다. 황 CEO는 기조연설에서 "코스모스 3를 탑재한 로봇과 모빌리티는 물리 법칙을 이해하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행동하는 지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10월을 휴머노이드 로봇이 실제 공장 현장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피지컬 AI 대중화의 분기점으로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황 CEO의 GTC 이후 행보에 대해 엔비디아 자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준비는 끝났고, 남은 과제는 플랫폼을 현장에서 구현할 하드웨어 파트너십 구축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의 파트너 중에서도 한국이 부상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피지컬 AI는 공장·조선소·물류센터 등 실제 현장에서 나온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능이 고도화되기 때문에, 다양한 제조업 기반을 갖춘 한국은 엔비디아 입장에서 협력 여지가 큰 시장으로 꼽힌다.
황 CEO도 이를 직접 언급한 바 있다. 황 CEO는 "한국은 상상력과 창의력, 야망은 매우 크지만 노동 인구가 부족해지는 상황"이라며 "AI와 로봇이 한국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출산에 따른 제조 현장의 인력 공백을 로봇으로 메워야 하는 한국의 구조적 수요와, 그 로봇에 탑재할 AI 플랫폼을 검증할 현장이 필요한 엔비디아의 전략적 필요가 맞물린다는 분석이다. 제조·물류·조선·철강 등 산업 현장에서 AI와 로봇을 결합하려는 수요가 커지면서 한국의 로봇 스타트업들도 엔비디아 생태계의 잠재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실제 국내 로보틱스 분야 첨단 기업으로 손꼽히는 LG전자와 현대차, 두산이 이번 황 CEO 방한의 행선지에 포함돼 있기도 하다. 해당 기업들은 각각 다른 영역에서 엔비디아의 빈자리를 채울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현대차는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산업용 휴머노이드 '아틀라스'를 앞세워 레벨4 자율주행 로보택시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LG전자는 엔비디아 칩셋 '젯슨 토르'를 탑재한 가정용 휴머노이드 '클로이드'로 아이작 플랫폼과의 결합을 구체화했고, 황 CEO가 GTC 기조연설에서 직접 소개하며 협력 관계를 공개적으로 확인했다.
두산로보틱스의 경우 지난 4월 황 CEO의 장녀이자 엔비디아 로보틱스 사업을 이끄는 매디슨 황 수석이사가 두산타워를 직접 찾아 산업용 로봇·스마트팩토리 협력을 실무 수준에서 논의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방한이 엔비디아와 한국 기업 간 협력 범위가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 클라우드, AI 인프라, 로보틱스, 피지컬 AI 스타트업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 산학계와 스타트업과도 교류… "국내 AI 산업 지형 바꿀수도"
황 CEO는 대기업뿐 아니라 학계, 스타트업 등과도 협업 방안 모색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대를 찾아 AI와 로보틱스 연구 협력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며, 8일엔 국내 AI·로봇 스타트업과 비공개 간담회를 연 뒤 네이버 제2사옥 '1784′를 직접 찾아 로봇 제어 시스템과 소버린 AI 협력을 구체화한다. 고대역폭메모리(HBM)부터 휴머노이드·자율주행·클라우드 인프라까지 피지컬 AI 생태계의 전 레이어를 포괄하는 회동 구성이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에이로봇, 엔닷라이트, 리얼월드 등이 황 CEO와의 간담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들은 엔비디아가 자사 기술을 활용해 서비스를 개발한 스타트업 중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곳을 선별해 지원하는 '인셉션 그랜드 챌린지'에 선정된 회사다. 디든로보틱스는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출신 연구자들이 창업한 피지컬 AI 스타트업으로 엔비디아의 투자 검토 대상에 올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 중심의 하드웨어 파트너십에서 스타트업 생태계 투자로 협력의 외연이 확장되는 형국이다.
한편 황 CEO는 GTC를 서울에서 개최할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한국을 일회성 납품처가 아닌 피지컬 AI 시대의 핵심 거점으로 설정했다는 의미로 시장은 받아들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젠슨 황 CEO가 로보틱스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한국을 같은 맥락에 포함한 것은 해당 분야에 대한 투자 검토가 병행되고 있다는 의미"라며 "방한 결과에 따라 국내 로봇·AI 산업의 수주 지형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