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반도체(DS) 부문 사업 성과의 10.5%를 특별경영성과급 재원으로 삼는 2026년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을 도출하면서, '영업이익 연동형 이익공유' 구조가 국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해외 기업들과 달리 사업 성과의 일정 비율을 노사 합의로 장기간 고정하는 방식은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고용 안정성을 보장받으면서도 글로벌 빅테크 기업 수준의 성과급 상한선과 고정 지분을 요구하는 국내 노동 환경이 기업의 비용 구조를 극도로 경직화시킨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기 수원시 영통구 삼성전자 본사./뉴스1

26일 업계에 따르면 해외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철저히 유동적이고 이사회가 주도하는 보상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인 대만 TSMC는 정관상 연간 이익의 최소 1% 이상을 직원 이익공유 상여금 재원으로 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는 하한선에 불과하며, 실제 지급 규모는 당해 연도 실적과 향후 천문학적인 설비 투자 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사회가 최종 결정한다. TSMC는 지난해 직원 이익공유 상여금으로 약 1030억대만달러(약 4조9000억원)를 책정했으며, 이 중 30% 이상을 현장 초급 직원에게 배정하되 직군별 평가와 개인 기여도를 정교하게 반영해 차등 지급했다.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도 회사 성과와 개인의 역량을 복합적으로 연동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마이크론의 단기 인센티브는 회사의 수익성과 전략적 목표 달성도를 각각 60 대 40의 비율로 가중 평가하며, 최종 지급 규모는 개인 고과에 따라 엄격하게 차등화된다. 핵심 인재 묶어두기(Retain)를 위한 주식 보상(RSU 등) 또한 직급과 특별 기여도에 따라 차별화가 이루어진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전 직원 대상 주식 보상 프로그램은 단순 이익 배분과 궤를 달리한다. 엔비디아의 보상은 주가 상승 가치와 연동되는 장기 인센티브(LTI) 성격이 강하며, 일정 기간 근무 조건을 충족해야 소유권이 이전되는 베스팅(Vesting) 구조를 취함으로써 인재의 장기 근속과 회사 가치 제고를 동시에 유도한다.

특히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이처럼 높은 보상을 제공하는 만큼, 강력한 고용 유연성도 동시에 작동 시킨다. 핵심 연구개발(R&D) 인력에게는 수백억원대의 파격적인 보상을 아끼지 않지만, 업황이 악화되거나 사업 구조조정이 필요할 경우 대규모 감원을 과감하게 병행한다. 실제로 인텔은 최근 수익성 개선과 사업 효율화를 위해 전체 인력의 상당수를 감축하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다. 글로벌 빅테크의 보상 체계는 실적과 리스크를 동등하게 분담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구조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국내 전문가들은 주 52시간제에 묶여 연구개발 몰입도에 제한을 받고, 강력한 노동법의 테두리 안에서 고용을 안정적으로 보장받는 국내 노동 시장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실적 악화 시 구조조정 리스크를 온몸으로 처하는 해외 기업들과 달리, 국내 생산직과 현장 인력은 리스크 부담이 낮은 환경에서 높은 수준의 보상 혜택을 온전히 누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파격적인 보상 규모보다, 직군과 개인의 기여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일률적인 이익 공유 구조'가 더 본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글로벌 기업들이 미래 투자 재원 확보와 핵심 인재 중심의 선택적 보상을 병행하는 것과 달리, 국내 기업들은 노사 압박에 밀려 사업 성과의 상당 부분을 구조적으로 고정 배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우려다.

이로 인해 직무의 난도나 전문성과 무관하게 메모리 호황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받은 생산직 인력이, 적자 사업부에서 사투를 벌이는 미래 성장동력 분야의 고급 연구개발 인력보다 더 많은 성과급을 받는 '보상 역전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이 같은 획일적인 배분 구조는 장기적으로 우수 연구 인력의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경고도 뒤따른다. 사업 성과를 직원들과 공유하는 취지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보상이 실제 기여도 및 직무 가치와 정교하게 연결되지 못하면 결국 기업의 장기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AI 반도체 전쟁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이러한 보상 구조가 초래할 비용 구조의 경직화에 대한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확보한 수익의 대부분을 차세대 공정 개발과 천문학적인 생산시설(팹) 건설에 재투입하고 있다. 실제로 TSMC는 올해 최대 560억달러(약 84조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공언했으며, 마이크론 역시 미국 내 공장 증설 등에 수십조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근로 시간 제약과 고용 경직성 속에서 단기 성과 배분 비율만 글로벌 스탠더드를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단기 성과 배분에 치우치기보다 미래 기술 투자를 위한 재원 확보와 핵심 인재 경쟁력 강화 사이에서 정교한 균형을 잡는 것이 향후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생존을 가를 최대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