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총파업 위기를 불과 한 시간 반을 남기고 극적으로 봉합했다. 반도체 생산라인 가동 중단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이번 합의가 삼성전자 사측 입장에선 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했다고 보기엔 어렵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사측은 10년에 걸친 구조적 비용 부담과 투자 경직성을 고스란히 안게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노사는 지난 20일 경기 수원시 경기지방고용노동청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직접 주재하는 막판 교섭을 벌였고, 총파업 예고 시각을 약 1시간 30분 앞두고 잠정 합의안에 서명하는 데 성공했다.
노사 간 핵심 쟁점은 성과급 배분 방식이었다. 노조는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제도화하고, 상한선을 없애달라는 요구를 6개월 이상 이어왔다. 사측은 경제적 부가가치(EVA) 기반의 기존 방식을 고수했으나, 파업 직전 결국 노조의 핵심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하며 합의에 도달했다.
◇ 성과급 자사주로 보상… 노사 합의 긍정 평가 요소
잠정 합의안의 골자는 기존 성과인센티브(OPI)를 유지하면서 DS(반도체)부문에 '특별경영성과급' 제도를 신설하는 것이다. 재원은 노사가 합의해 앞으로 10년간 사업 성과의 10.5%로 고정됐으며, 상한선은 두지 않기로 했다. 기본급은 기준인상률 4.1%에 성과인상률 평균 2.1%가 더해졌다.
합의의 즉각적인 효과는 분명하다. 반도체 생산라인 전면 셧다운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현재 인공지능(AI) 인프라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최첨단 D램 양산을 병행 중이다. 이 시점에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면 엔비디아·AMD 등 글로벌 고객사와의 납기 약속이 흔들리고, 경쟁사인 SK하이닉스로 물량이 이전되는 최악의 수순을 밟을 수도 있었다.
인재 유지 측면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합의로 DS부문 직원은 올해 1인당 최대 5억~6억원 수준의 성과급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HBM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치열하게 경쟁하는 SK하이닉스와의 처우 격차를 줄임으로써, 핵심 엔지니어 이탈에 제동을 거는 효과가 기대된다.
성과급을 전액 자사주로 지급한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미국 빅테크 기업을 비롯해 반도체 대기업의 경우 성과급 보너스를 자사주로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금성 보너스의 경우 받는 순간 회사와 직원의 이해관계가 느슨해지지만, 자사주의 경우 회사와 연대가 더 강해진다. 엔비디아, 인텔 등이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를 광범위하게 쓰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 성과급 재원 10년 제도화는 투자에 부담
반면 중장기적 관점에선 사측이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달게 됐다. 이번 합의는 사측에 구조적으로 무거운 짐을 지운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가장 큰 부담은 성과급 제도의 '경직성'이다. 합의는 2026년부터 2035년까지 10년간 적용된다. 영업이익 목표를 달성하면 성과급이 지급되는 구조지만, 그 재원 비율(10.5%)과 제도 자체가 10년 동안 고정된다는 점은 경영 유연성을 제약하는 요소다.
반도체는 기술 패러다임이 3~5년 단위로 급변하는 산업이다. 그 사이 사업 구조가 바뀌거나 새로운 투자가 필요해지더라도, 이미 확정된 비용 구조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사업 성과의 10.5%를 성과급으로 고정 지출하는 구조에서, 수익이 충분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반도체 업황이 꺾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며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더라도 성과급 비율은 유지되고,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에 써야 할 재원이 그만큼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적자 사업부 문제도 해결책이 아닌 유예에 가깝다. 올해 적자가 예상되는 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는 2026년에 한해 흑자 부문인 메모리 반도체의 성과급 재원으로 일정 수준의 보상을 받게 된다. 이는 메모리 부문 직원들의 성과가 희석되는 구조다. 적자 사업부에 대한 차등 적용이 2027년부터 시작된다지만, 비메모리의 근본적인 경쟁력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구조적 긴장은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