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진 신임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장./뉴스1

삼성전자가 연말 정기인사철이 아닌 5월에 TV 수장인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장을 전격 교체하면서 TV 사업에 대한 대수술을 예고했다. 지금까지 VD 사업부장은 TV 기술에 정통한 개발자 출신이 맡아왔다. 하지만 구글 출신의 마케팅 전문가인 이원진 사장이 신임 사업부장에 오르면서 향후 삼성전자 TV 사업이 완전히 재편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용석우 사장을 교체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4분기, 올해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기존의 방식으로는 수익성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사업지원실의 전략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케팅, 서비스 등에 정통한 이원진 사장을 새로운 수장에 앉힌 것도 삼성전자 TV 사업의 고질적 문제였던 고비용·저수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라는 해석이다.

◇ 예견된 TV 사업 효율화… 中에 대항할 수단 없어

삼성전자가 TV 사업을 대대적으로 개편할 것이라는 신호는 이미 지난해 3분기부터 단행된 경영진단에서 포착됐다. 당시 사업지원TF(현 사업지원실)은 VD 사업부의 각 조직을 대상으로 사업 현황과 개선 방향을 담은 자료를 제출했고, 이를 토대로 사업별 비용 구조, 사업 타당성, 경쟁 상황 등을 점검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기준 20년 연속 세계 TV 시장 1위를 지키고 있지만 문제는 '돈이 되는 1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부터 삼성전자 TV 사업은 간신히 흑자를 내는 사업부에서 대규모 적자를 내는 사업부가 됐다. 지난해 4분기 TV 사업은 6000억원대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며, 올해 1분기에도 겨우 적자를 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의 신흥 강호에 대항할 수단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1분기 출하량 기준 글로벌 TV 점유율은 삼성전자 19.2%, TCL 13.7%, 하이센스 11.9%, LG전자 10.7%로 집계됐고, 같은 기간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하이센스·TCL의 합산 점유율은 39%까지 올라간 반면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39%에서 28%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프리미엄 중심의 TV 사업 전략마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삼성에 정통한 관계자는 "지난해 경영진단에서 제기된 삼성전자 TV 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비용 구조가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라며 "제품·라인업별 수익성, 마케팅비, 영업비, 재고·물류 부담, 저수익 제품군의 존속 여부 등 종합적인 측면에서 고쳐야 할 것이 많다"고 설명했다.

◇ 이원진 선임은 삼성 TV 사업의 패러다임 전환

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연합뉴스

리더십 측면에서도 삼성 TV 사업의 전통과 단절을 선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과거 완제품 사업의 리더로 TV 기술에 정통한 경영인을 선임해왔지만 이번 인사를 통해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드러냈다. 이원진 사장은 한국 어도비, 구글을 거쳐 2014년 삼성전자에 합류한 마케팅·플랫폼 서비스 전문가로 꼽힌다.

과거 삼성전자 TV 사업 수장들은 TV 기술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삼성 TV의 화질, 기술적 우위와 차별점을 강조해 왔다. 국내 TV 업체 관계자는 "마케팅 전문가인 이원진 사장을 새로운 수장으로 선임한 것은 TCL, 하이센스 등 중국 가전 업체들과 비교해 완전히 앞서 나갈 수 있는 하드웨어적 기술의 부재를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삼성 내부적으로는 이재용 회장을 비롯한 핵심 경영진이 이원진 사장이 지닌 플랫폼 기반 콘텐츠, 서비스 분야의 전문성을 높이 평가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존에 삼성전자 TV 사업 기조가 '더 많은 TV를 판매한다'는 전략이었다면 이젠 'TV를 통해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한다'는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노태문 DX부문장(사장)의 경영 철학이 삼성전자 완제품 사업 전반에 강하게 작용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이번 인사의 핵심이다. 모바일 전문가인 노태문 사장은 DX부문장 취임 이후 TV, 가전 분야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보다는 각 사업부장의 역량에 위임해왔다. 삼성전자 합류 이후 노태문 사장과 함께 무선사업부에서 서비스 부문을 총괄한 바 있는 이원진 사장을 VD 사업부장에 선임한 것은 기존 모바일 사업부의 강점으로 꼽히는 인공지능(AI)과 사용자 경험 등 서비스 중심 경쟁력을 더 강화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