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PC가 진열돼 있다./뉴스1

레노버·델·애플·에이수스 등 주요 노트북·PC 제조사가 올 1분기에 출하량을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번 출하량 증가는 수요 확대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공급망 압박에 대응하며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인공지능(AI) 서비스 확대에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여파까지 더해져 원자재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노트북·PC 제조사는 부품값이 더 오르기 전에 제품을 찍어내는 식으로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13일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 1분기 세계 데스크톱·노트북·워크스테이션(전문적 작업을 위해 설계된 고급 PC) 전체 출하량은 6480만대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2% 증가한 수치다. 이 중 노트북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한 5080만대로 집계됐고, 데스크톱은 이 기간 5.4% 증가한 1400만대가 출하된 것으로 조사됐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 집계에서도 올 1분기 세계 PC·노트북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약 4% 상승한 6280만대를 기록했다.

옴디아는 이런 출하량 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부품 가격의 광범위한 상승이 이뤄지기 전 주요 공급·채널 업체가 앞당겨 주문한 점'을 꼽았다. 사실상 향후 수요를 앞당겨 쓴 탓에 올 1분기에 출하량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10 지원 종료에 따라 산업용 제품이 교체되고 있다는 점 ▲애플 등 주요 브랜드에서 예년보다 더 많은 신제품을 내놓은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벤 예 옴디아 수석 애널리스트는 "현재 공급망 압박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 1분기 성장치는 올해 최대 기록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올 2분기 메모리·스토리지(저장장치) 비용이 당초 예상보다 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노트북·PC 제조사의 수익성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 1분기 제조사별 노트북·PC 출하량 점유율을 보면 레노버가 25.5%로 1위를 기록했다.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8.7% 오른 1653만대로, 점유율이 1.3%포인트(P) 증가했다. 델의 출하량은 이 기간 7.8% 오른 1029만대로, 점유율은 15.9%를 차지하며 3위에 이름을 올렸다. 4위는 711만대(점유율 11.0%)를 출하한 애플이, 5위는 출하량 452만대(7.1%)를 기록한 에이수스가 차지했다.

주요 제조사 중에서 출하량 감소를 보인 곳은 HP뿐이다. HP의 올 1분기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4.9% 감소한 1214만대로 집계됐다. 점유율도 1.6%P 감소한 18.7%를 기록했으나 2위 수성에는 성공했다.

그래픽=손민균

◇ 노트북·PC 메모리 가격 1년 새 4배 가까이 폭등

옴디아에 따르면 노트북·PC에 탑재되는 메모리·스토리지 가격은 보급형부터 프리미엄까지 전방위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작년 1분기와 비교해 올 2분기 현재 노트북·PC 탑재 메모리 가격은 3.3~3.7배 올랐다.

구체적으로 보급형 노트북·PC에 탑재되는 메모리 반도체(D램 8GB와 스토리지 256GB 조합) 가격은 이 기간 약 50달러(약 7만5000원)에서 250% 상승한 170달러(약 25만4000원)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프리미엄 조합(16GB+1TB) 역시 232%(237달러) 정도 올라 현재 가격이 약 340달러(약 50만원)로 조사됐다.

시장조사업체나 증권사·투자은행(IB) 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런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이 최소 연말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공통된 분석이다. 2027년 말~2028년 초까지 가격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는 조사도 다수다. AI 서버 수요 폭증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고용량 스토리지 생산이 늘면서, 소비자용 메모리 공급이 줄어드는 구조가 장기간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PC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만큼 주요 공급처(주로 유통사)에서 가격이 오르기 전 물량을 확보하려 주문량을 늘리고 있다"며 "출고 가격이 오르기 전 제품을 확보해야 수익성을 방어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만 "공급처 입장에서도 무한정 재고를 쌓을 수 없기에 제조사 가격 인상이 본격화한 지금은 속도 조절에 들어간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그래픽=손민균

◇ 노트북·PC 가격 줄줄이 인상

D램·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가 노트북·PC 제조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통상 15% 정도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이 비중이 올 1분기에는 30%를 넘어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AI 수요 증가에 따른 반도체 쇼티지(공급 부족)는 중앙처리장치(CPU) 가격 인상로도 번지고 있다. 인텔은 이미 일부 보급·구형 CPU 가격을 15% 이상 인상했다. 올 2분기에는 대다수 CPU 가격을 10~25% 수준 올릴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AMD 역시 인텔과 비슷한 수준의 CPU 가격 인상을 계획 중이다. 트렌드포스는 "900달러짜리 노트북을 가정하면 메모리·CPU가 전체 부품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기존 45%에서 58%로 증가할 수 있다"며 "현재 수익성을 유지하려면 소매가격이 최대 40% 인상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주요 노트북·PC 업체는 올해 초부터 제품 가격을 인상하고 있다. 에이수스는 지난 1월부터 일부 노트북·데스크톱 가격을 15∼25% 올렸다. HP·델도 올 2분기 가격 조정을 공식 발표한 바 있다.

국내에서는 LG전자가 지난 1일부터 '그램' 일부 모델 가격을 최대 100만원 인상했다. 2026년형 16인치 그램 모델은 출시 당시 314만원에서 현재 354만원대로 13% 추가 상승했다. 삼성전자도 '갤럭시북6 시리즈' 가격을 사양에 따라 17만5000원에서 최대 90만원까지 인상했다.

이에 따라 시장조사업체들은 올해 세계 연간 노트북·PC 출하량이 전년 대비 두 자릿수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IDC는 11.3%, 가트너는 10.4% 하락을 점쳤다. 트렌드포스는 노트북 시장이 14.8% 쪼그라들 것으로 전망했다.

노트북·PC 업체는 올 1분기 출하량 증가에도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부품값 폭등이 일찍이 전망되면서 소비자 사이에서도 '오늘이 가장 싸다'는 인식이 퍼져 수요가 단기적으로 오르기도 했다"면서도 "사실상 향후 발생할 수요를 앞당긴 것이라 향후 매출 하락에 대응해 강도 높은 원가 절감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