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응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오토모티브 시스템 총괄 이사./텍사스인스트루먼트

아날로그·임베디드 반도체 분야 강자로 꼽히는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가 자율주행차 산업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TI는 1930년에 설립된 후 전압·온도 등 연속적인 신호를 측정하는 아날로그 칩과 기기 안에서 센서·통신 기능 등을 제어하는 임베디드 반도체 분야에서 뚜렷한 성과를 올려왔다. TI가 보유한 약 8만개 제품은 10만 곳이 넘는 기업에서 쓰인다. 작년 매출은 176억8200만달러(약 26조1640억원)를 기록했는데, 이 중 95%가 아날로그·임베디드 칩 사업에서 나왔다.

TI는 아날로그·임베디드 칩 분야에서 쌓은 기술을 집약해 개발한 차량용 반도체를 올해 초 출시했다. TI 측은 "자사 제품을 도입한 고객사는 '자율주행 레벨3(L3)'에 손쉽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저전력에도 높은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을 앞세워 최근 다양한 고객사를 확보하는 등 시장 공략 측면에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L3는 '조건부 자율주행'에 해당하는 기술 수준으로, 운전자가 특정 상황에만 개입하고 대부분 구간에서 차량이 스스로 주행하는 단계를 말한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랫뷰리서치에 따르면 TI가 진출한 자율주행 반도체 시장 규모는 작년 672억달러(약 100조원)에서 2032년에는 1343억2000만달러(약 199조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 "업계 최고 수준의 전력 효율성"

TI가 출시한 자율주행 솔루션 제품은 ▲TDA5 고성능 컴퓨팅 시스템온칩(SoC) ▲4차원(D) 이미징 레이더 송수신기(트랜시버·제품명 AWR2188) ▲이더넷 물리 계층(자율주행차 센서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를 전송하는 내부 통신·제품명 DP83TD555J-Q1 10BASE-T1S)으로 구성된다. 각각 자율주행차에서 두뇌·눈·신경망과 같은 역할을 한다.

마크 응 TI 오토모티브 시스템 총괄 이사는 최근 조선비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TDA5 제품군의 차별화 지점으로 '업계 최고 수준의 전력 효율성'을 꼽았다. 그는 "TDA5 제품군은 자동차 프로세싱 분야에서 20년 이상의 경험을 보유한 TI가 새롭게 내놓은 솔루션"이라며 "확장성·안전성·효율성에 집중해 개발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율주행차에서 두뇌 역할을 하는 TDA5 칩은 적은 전력으로도 빠르게 연산을 처리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TDA5 칩의 초당 연산 수는 최대 1200조(1200TOPS·1TOPS는 1초당 1조번 연산)에 달한다. 1와트(W)당 24TOPS 연산을 지원한다. 마크 응 이사는 "현재 완성차 업체가 400TOPS의 인공지능(AI) 연산을 구현하려면 150W 이상을 소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TI 칩은 50W 미만으로 400TOPS를 실행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쟁 솔루션보다 적은 전력으로 AI 작업을 더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며 "전력·냉각 요구 사항을 줄여줄 수 있는 제품이라, 고객사가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을 더 쉽게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TI는 저전력·고성능 TDA5 칩을 구현하기 위해 자사 신경망처리장치(NPU) 제품 C7를 접목했다. 이를 통해 이전 세대 대비 AI 연산 성능이 최대 12배 향상됐다. 제작 공정에는 자동차 인증을 받은 5㎚(나노미터·10억분의 1m)가 사용된다. 또 UCle(칩렛들을 하나의 패키지 안에서 서로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통신하기 위한 개방형 표준 인터페이스) 기반으로 제작된 칩이라 칩렛(고성능 반도체 기능을 여러 개로 쪼개 제조한 뒤 합치는 기술) 설계를 지원해 고객사 맞춤형 적용도 가능하다.

마크 응 이사는 "TDA5 칩은 수십억 개 파라미터 규모의 대형언어모델(LLM)·비전언어모델(VLM)·고급 트랜스포머 네트워크를 지원한다"며 "자율주행 L1부터 L3까지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TI는 시놉시스와 협업해 고객사의 개발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가상 개발 키트도 제공한다. 디지털트윈(실제 세계를 디지털 공간에 정밀하게 구현해 시뮬레이션 등을 진행하는 개념)이 포함된 개발 도구를 통해 고객사는 차량 없이도 TDA5가 자사 제품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볼 수 있다. TI 측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의 출시 기간을 최대 12개월까지 단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능"이라고 소개했다.

TI 자율주행 솔루션을 탑재한 차량이 도로 상황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 이미지./TI

◇ "자율주행 기술 개발하는 한국 고객 지원에 최선"

자율주행차의 '눈'과 '신경망' 역할을 하는 제품에도 다양한 기능이 추가됐다. TI는 이번 레이더 트랜시버에 아날로그-디지털 컨버터(물리 신호를 데이터로 바꿔주는 장치)와 레이더 처프 신호 슬로프 엔진(레이더가 보내는 신호의 변화 속도를 계산해 거리를 더 정확히 측정하는 기술)을 적용, 기존 제품 대비 성능을 최대 30% 높였다.

이를 통해 350m 이상 떨어진 물체를 감지할 수 있다. 가까이 있는 두 대의 차량을 구별하거나 도로의 작은 물체를 발견할 수 있을 만큼 높은 해상도를 갖췄다. 송신기 8개와 수신기 8개(8x8)를 단일 LOP(패키지 직접 연결 방식의 안테나 기술)로 제공, 별도 장치를 차량에 넣지 않아도 고해상도 레이더 시스템을 구현할 수 있어 차량 설계를 단순화할 수 있다.

마크 응 이사는 "이번에 출시한 트랜시버는 4차원 이미징 기술을 통해 차량이 물체가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높은지, 얼마나 빨리 멀어지거나 가까이 오는지를 감지할 수 있다"며 "안개·비와 같은 악천후나 밤에는 정확한 측정이 어려운 센서가 많은데, TI 트랜시버는 레이더를 기반으로 해 모든 기상 조건에서 일관되게 작동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속도로 위험 요소를 조기에 감지하고 낙하 화물이나 고동적범위(HDR) 환경에서의 물체 감지 등 까다로운 상황에서 안정적인 성능을 발휘하는 제품"이라고 했다.

신호 전달 속도는 자율주행차를 구현하는 데 있어 핵심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마크 응 이사는 이더넷 역할을 이렇게 비유했다.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공이 굴러온다고 가정해 보자. 눈이 공을 포착하면 이 정보를 뇌에 보낸다. 신호를 받은 뇌는 멈춰야 한다고 판단한다. 신경을 통해 '브레이크를 잡아라'란 명령을 보내면 손과 발이 이를 수행한다. TI의 감지·네트워킹·처리 기술은 자율주행 차량에서 이 과정을 구현한다."

TI의 이더넷은 나노초 단위(10억 분의 1초)의 동기화를 지원한다. 직렬 주변 장치 인터페이스(SPI·칩 간에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신 방식)에 미디어 액세스 컨트롤러(MAC·데이터 전송 순서와 충돌을 관리하는 기능)를 내장하는 구성을 통해 성능을 끌어올린 것이다. 마크 응 이사는 "레이더가 장애물을 감지하는 순간 해당 정보가 중앙 칩(TDA5)에 즉시 전달돼 차량이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구조"라고 했다.

마크 응 이사는 TDA5 제품군이 한국을 비롯한 여러 시장에 출시해 점차 확산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TI 솔루션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시장에 배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며 "한국은 TI에 중요한 시장이고, 차세대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한국 고객을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반도체를 통해 전자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공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열정은 TI의 핵심 가치"라며 "높은 기술 신뢰도를 지녔음에도 낮은 가격에 전력 소비까지 줄인 TDA5 제품군에는 이런 열정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