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로픽이 코딩 비서 클로드(Claude) 흥행을 발판으로 빠르게 몸집을 키우며 인공지능(AI) 모델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앤트로픽의 연간 반복 매출(ARR)은 최근 300억달러를 돌파하며, 한때 기세가 꺾인 오픈AI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이 같은 성장의 이면에는 단순한 모델 성능 경쟁을 넘어, 앤트로픽-구글-브로드컴으로 이어지는 정교한 'AI 인프라 동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화려한 모델 경쟁 뒤에서 실제 돈의 흐름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인프라 통제력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누가 더 똑똑한 AI를 만드느냐를 넘어, 그 모델을 구동하기 위한 연산 자원을 누가 설계하고 공급하느냐가 이 판의 실질적인 수익 구조를 결정짓는 핵심 열쇠가 된 셈입니다.

앤트로픽의 성장은 곧 막대한 연산 수요 증가를 의미합니다. 생성형 AI는 토큰 생성량이 늘어날수록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구조입니다. 이 때문에 앤트로픽은 현재 구글 클라우드의 TPU(AI 가속기) 인프라를 대량으로 임대해 사용하고 있으며, 중장기적으로는 2027년부터 자체 데이터센터에 약 3.5기가와트(GW) 규모의 구글-브로드컴 합작 TPU 랙을 직접 구축하는 인프라 내재화까지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3.5GW는 원자력 발전소 3~4기에 해당하는 전력량으로, 개별 기업의 AI 인프라 투자로는 압도적인 규모입니다.

이 구조에서 가장 큰 실속을 챙기는 곳은 단연 브로드컴입니다. 브로드컴은 구글 TPU 개발에 깊숙이 관여하는 핵심 파트너로, 단순 부품 공급업체를 넘어 칩 설계 단계부터 참여하는 사실상의 공동 설계자입니다. 앤트로픽이 구글 클라우드를 빌려 쓰든 자체 서버를 구축하든, 하드웨어의 뿌리는 브로드컴의 주문형 반도체(ASIC)와 초고속 네트워킹 기술에 닿아 있습니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브로드컴이 이번 앤트로픽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2026년 210억달러, 2027년에는 420억달러(약 56조원)에 달하는 AI 관련 매출을 거둘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앤트로픽이 재주를 넘을 때마다 브로드컴의 금고는 두 배씩 불어나는 셈입니다.

구글의 전략도 치밀합니다. 자사 AI 모델 제미나이(Gemini)와 경쟁 관계에 있는 앤트로픽을 클라우드 고객으로 묶어두면서, 동시에 TPU 생태계를 확장하는 이중적인 '프레너미(Frenemy, 친구이자 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모델 경쟁에서는 일부 점유율을 내주더라도, 앤트로픽이라는 대형 고객을 통해 TPU 제조 단가를 낮추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인프라 수익을 확실히 챙기겠다는 계산입니다. 최근 구글과 브로드컴이 2031년까지 장기 공급 계약을 맺은 것 역시 이러한 견고한 생태계를 방증합니다.

결국 AI 산업의 주도권은 모델 성능 경쟁에서 점차 인프라 통제력 경쟁으로 이동하는 모습입니다. 모델 기업들이 더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토큰을 쏟아낼수록, 그 뒤에서 이를 떠받치는 칩과 네트워크 공급망의 가치는 더욱 공고해지는 구조입니다.

이 같은 변화는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지금까지 AI 반도체 시장은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이에 결합된 고대역폭메모리(HBM) 중심으로 성장해왔습니다. 하지만 구글 TPU를 중심으로 한 ASIC 생태계가 앤트로픽 같은 대형 고객을 등에 업고 확산될 경우, 메모리 수요 구조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앤트로픽의 성장은 표면적으로는 모델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구글과 브로드컴이 설계한 커스텀 칩 생태계가 엔비디아의 대항마로 공고히 자리 잡는 계기가 되고 있다"면서 "국내 기업들도 엔비디아 일변도의 공급망에서 벗어나, ASIC 연합군의 팽창이 가져올 메모리 시장의 지각변동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