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기가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라 고부가 반도체 기판 사업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서버·데이터센터용 핵심 부품인 FC-BGA(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를 중심으로 생산능력 확충과 기술 고도화를 병행하는 전략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지난해 1조원을 웃도는 설비투자(CAPEX)를 집행한 데 이어 올해도 비슷한 규모의 투자를 단행할 전망이다. 무게 중심을 반도체 기판으로 옮긴다는 방침이다. 생성형 AI와 고성능 컴퓨팅(HPC) 확대에 따라 고성능 반도체 기판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현재 삼성전기의 서버·데이터센터용 FC-BGA 생산라인은 사실상 풀가동 상태다. 일부 보완 투자가 진행 중이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지난달 2026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해당 제품 수요가 생산능력보다 50% 이상 많다"며 "라인 보완과 공장 확대를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기는 부산과 세종 사업장을 중심으로 증설을 추진 중이다.
FC-BGA는 고성능 반도체와 기판을 연결하는 핵심 부품으로, 고속 신호 처리와 발열 제어 성능이 요구된다. AI 서버용 반도체는 데이터 처리량과 전력 소모가 크게 늘면서 기존 대비 높은 층수와 정밀도를 요구해 기술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로 평가된다.
이에 발맞춰 삼성전기의 투자 방향 역시 변화하고 있다. 과거 MLCC(적층세라믹커패시터) 등 범용 부품 중심에서 벗어나, 2022년 이후 패키지 솔루션 투자 규모가 크게 확대되며 FC-BGA 중심의 투자 기조가 뚜렷해졌다. 이는 AI 반도체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 영역으로 사업 축을 전환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첨단 반도체 기판의 수급 불균형은 가격에도 반영되고 있다. 삼성전기는 최근 일부 FC-BGA 제품군의 판매가를 인상했다. 원재료 가격 상승과 공급 부족이 맞물리면서 가격 협상력이 높아진 영향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삼성전기의) 기판은 이미 완판된 상황이며 다음 단계는 가격 상승"이라며 FC-BGA 가격 추정치를 약 10% 상향 조정했다. 업계에서는 판가 인상을 본격적인 수익성 개선 국면 진입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MLCC 역시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AI 서버용 고사양 제품 수요 증가로 공급이 빠듯해지면서 가격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고용량·고신뢰성 MLCC는 AI 서버의 전력 안정성을 유지하는 핵심 부품으로, 수요 확대에 따른 수익성 개선 기대가 커지고 있다.
사업 포트폴리오 변화도 가속화되고 있다. 삼성전기는 기존 스마트폰·PC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AI 서버, 전장, 우주항공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전장 분야에서는 자율주행 확산에 대응해 카메라모듈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북미 시장 대응을 위한 멕시코 공장 증설도 추진 중이다.
증권가는 삼성전기가 AI 수요 확대에 힘입어 실적 개선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 등 외부 변수는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수출 비중이 높은 사업 구조상 물류비와 유가 변동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전장 산업 성장세가 이를 상당 부분 상쇄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