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는 데이터를 빠르고 안전하게 전달하는 것을 넘어, AI 인프라의 설계자이자 주체가 돼야 합니다."(정재헌 SK텔레콤 사장)
"KT의 정체성을 AI 전환(AX) 플랫폼 기업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박윤영 KT 사장)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최첨단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시장을 선점하겠습니다."(홍범식 LG유플러스 사장)
올해 통신사의 경영 방향을 엿볼 수 있는 2026년 주주총회가 막을 내렸다. SK텔레콤과 KT는 수장 교체가 마무리되면서 미래 먹거리 확보에 시동을 걸었다. 정재헌 SK텔레콤 사장, 박윤영 KT 사장, 홍범식 LG유플러스 사장은 포화된 통신 시장의 성장 한계를 넘어 올해 승부처로 AI 데이터센터(AIDC), AI 컨택센터(AICC) 확대 등 AI를 중심으로 한 B2B(기업 간 거래)를 꼽았다.
실제 통신사 실적에서 성장세를 보이는 영역은 AI를 중심으로 한 B2B 사업이다. 지난해 SK텔레콤의 AI 데이터센터 및 AX(AI 전환) 사업 부문 매출은 7185억원으로 전년보다 25.6% 늘었다. 같은 기간 이동통신 매출은 1조2051억원으로 전년 대비 5.7% 줄었다.
KT의 경우 AICC·사물인터넷(IoT)·클라우드·스마트 모빌리티 등 AX 플랫폼 기반의 AI·IT 사업 부문 매출이 지난해 전년보다 3% 늘었는데, 같은 기간 KT의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매출은 1.9% 늘었다. LG유플러스 역시 지난해 AI DC 매출이 4220억원으로 전년보다 18.4% 늘었지만, 같은 기간 B2C 매출은 3.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정재헌 SK텔레콤 사장은 지난달 2일(현지 시각)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MWC 2026에서 "통신사 고유의 인프라와 운영 노하우가 AI 인프라 구축과 서비스 확산의 열쇠"라며 "AI 시대 경쟁력은 기술뿐만 아니라 인프라를 어떻게 설계하고 연결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현재 SK텔레콤은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손잡고 울산 AI 데이터센터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착공에 나섰으며, 오픈AI와도 손잡고 서남권에 초대형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이 외에 정부의 '국가대표 AI 모델' 프로젝트 2단계 진출에 성공하며 자체 개발한 AI 모델(A.X K1)을 통해 소버린 AI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박윤영 KT 사장은 지난달 31일 취임사에서 "KT의 정체성을 AX 플랫폼 기업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 같은 방향성을 조직개편에 그대로 반영했다. 이번 조직개편에서 KT는 B2B 전략·사업·기술·제휴 등으로 분산돼 있던 기능을 통합해 'AX사업부문'을 신설했다. 해당 조직 부문장에는 컨설턴트 출신 1968년생 박상원 전무를 영입했다. 기존 CTO(최고기술책임자) 조직인 기술혁신부문은 AX미래기술원(CTO)과 IT부문(CIO)으로 분리했다. AX미래기술원장엔 최정규 LG AI연구원 에이전틱 AI그룹장(상무)이 내정됐다. 최 그룹장 산하엔 프론티어AI랩, 에이전틱AI랩, AX데이터랩 등 3개 연구 조직이 들어선다. 네이버 AI 기반 통·번역 서비스 파파고를 개발한 김준석 한화생명 AI실장을 에이전틱AI랩장으로 영입했다. AX데이터랩장도 역시 외부 출신인 이상봉 상무를 인사했다. 프론티어AI랩장은 박재형 상무가 맡았다.
KT는 독자 개발한 대형언어모델(LLM) '믿:음2.0'을 시작으로, 마이크로소프트(MS)와 협력 기반으로 개발한 AI '소타(SOTA) K', 오픈소스 기반으로 개발된 라마K 등의 모델을 선보이며 멀티 LLM 전략을 선보이며 B2B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소타K는 KT가 국내 기업의 AX 수요를 겨냥해 출시한 한국형 AI 모델로 챗-GPT 4o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MS와 협력해 지난해 11월에는 보안에 특화된 클라우드 솔루션 시큐어 퍼블릭 클라우드를 선보였다. 미국 '팔란티어'와도 협력하고 있다. KT클라우드와 네트워크 인프라를 팔란티어의 핵심 솔루션과 결합해 한국 시장에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홍범식 LG유플러스 사장 역시 지난달 24일 열린 2026년 주주총회에서 B2B AX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정관에 '데이터센터 설계·구축·운영(DBO) 관련 운용업 및 용역·공사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DBO 사업은 고객사로부터 위탁받아 데이터센터의 설계부터 구축, 운영까지 전 과정을 맡는 통합 컨설팅 사업인데 데이터센터 사업 확대를 위한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LG유플러스는 현재 경기 파주시에 6156억원을 투자해 2027년 준공을 목표로 AI 데이터센터를 건설 중이다. 이곳에서 회사는 초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서버 기반 GPUaaS(GPU 구독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홍 사장은 "LG유플러스 AI 데이터센터의 핵심 경쟁력은 LG전자의 차세대 액체 냉각 솔루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안정적인 전력 인프라 기술 등 그룹 역량을 하나로 모은 '무한 LG 시너지'"라며 "28년간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며 축적한 노하우로 전문성과 신뢰성도 갖췄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는 지난해 AI 데이터센터 시장 규모를 177억달러(26조5924억원)로 추산했는데 2032년까지 연평균 26.8% 성장률을 기록해 936억달러(140조5684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홍인기 경희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통신사들이 B2C 영역에서 그나마 4G(4세대 이동통신), 5G(5세대 이동통신) 가입자를 확보하며 버텨왔지만 인구 감소,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성장 한계에 봉착했다"면서도 "하지만 AI가 5G를 기반으로 인프라를 구축하는 기업 수요에 탄력을 주면서 B2B 쪽에서 수익을 창출하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