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그간 고집스럽게 유지해온 고가 프리미엄 전략의 틀을 깨고 대중화 노선으로의 급격한 선회를 선택했습니다. 지난 4일(현지 시각) 뉴욕 행사에서 베일을 벗은 보급형 모델 '맥북 네오(MacBook Neo)'는 국내 출시가 99만 원(북미 599달러), 교육 할인 적용 시 약 85만 원 수준(북미 499달러)이라는 파격적인 가격표를 달고 나왔습니다.

맥북 네오(애플 제공)/뉴스1

기존 맥북 라인업의 높은 가격 장벽을 허문 이번 행보는 단순히 판매량을 늘리려는 고육지책이라기보다, 북미 교육 시장을 장악한 구글 크롬북에 내준 주도권을 탈환하고 온디바이스 AI 시대의 단말 점유율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고도의 공세적 시도로 풀이됩니다.

이번 신제품에서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컴퓨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칩셋의 선택입니다. 애플은 맥북 네오에 기존 PC용 'M 시리즈' 칩 대신, 아이폰16 프로에 탑재됐던 'A18 프로' 칩을 이식했습니다. 칩셋은 CPU(연산), GPU(그래픽), NPU(AI 처리) 등을 하나의 칩에 모아놓은 핵심 부품인데, 애플은 스마트폰용으로 대량 생산되는 이 칩을 노트북에 활용하는 '플랫폼 통합 아키텍처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이미 검증된 모바일 칩의 생산 라인을 공유함으로써 제조 원가를 획기적으로 절감하는 방식입니다. 인텔 기반 맥 시대에는 PC와 모바일의 설계 방식이 달라 불가능했던 이러한 전략은, 설계부터 제조까지 전 과정을 직접 통제하는 애플만의 수직 통합 구조 덕분에 실현 가능해졌습니다. 특히 수억 대의 아이폰에 들어가는 칩 물량을 맥북과 공유하며 발생하는 '규모의 경제'는 경쟁사가 흉내 낼 수 없는 애플만의 강력한 수익 구조를 만듭니다.

성능 또한 보급형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강력합니다. 애플은 자체 반도체 설계 역량을 바탕으로 6코어 CPU와 5코어 GPU 구조를 최적화해, 최신 인텔 코어 울트라 5 기반 PC 대비 웹 브라우징 속도는 최대 50%, 온디바이스 AI 작업 속도는 최대 3배까지 높였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에 13인치 리퀴드 레티나 디스플레이와 1.23kg의 가벼운 무게, 16시간에 달하는 배터리 수명은 '저렴한 노트북은 성능이 떨어진다'는 기존의 통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며 윈도우 진영의 저가형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애플의 이러한 승부수는 최근 퀄컴과 마이크로소프트(MS) 연합의 거센 공세에 대한 대응 성격이 짙습니다. 퀄컴이 '스냅드래곤 X 시리즈'를 앞세워 윈도우 노트북의 전력 대비 성능(전성비)을 맥북 수준으로 끌어올리자, 애플은 아예 '가격'이라는 가장 날카로운 무기로 방어선을 구축한 것입니다. 특히 생성형 AI 기능인 '애플 인텔리전스'의 확산을 위해서는 하드웨어 보급 대수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맥북 네오는 학생층과 일반 사용자들을 애플의 AI 생태계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입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애플의 전략은 단기적인 기기 마진보다는 장기적인 생태계 확보, 즉 '락인(Lock-in, 사용자를 특정 서비스에 묶어두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macOS와 아이클라우드, 에어드롭의 편의성에 길들여진 사용자는 성인이 된 후에도 자연스럽게 아이폰과 고가형 맥북으로 이어지는 충성 고객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드웨어 판매를 넘어 향후 구독 서비스와 앱스토어 수수료 등 소프트웨어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큰 그림으로 해석됩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애플이 모바일 칩을 맥북에 이식한 것은 하드웨어 제조사에서 플랫폼 생태계 기업으로 완벽히 체질을 개선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강력한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이번 공세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노트북 제조사들에게도 상당한 압박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90만 원대 맥북의 등장은 '갤럭시 북' 등 국내 보급형 노트북 시장의 점유율 구도를 뒤흔들 강력한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