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 리벨리온 대표가 1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사옥에서 열린 설립 5주년 기념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자사 AI 반도체 '리벨쿼드'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정두용 기자

"경쟁사는 엔비디아다. 맞아 죽더라도 세계 시장에서 맞아 죽겠다는 각오다."

박성현 리벨리온 대표는 1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사옥에서 설립 5주년 기념 '미디어데이'를 열고 향후 사업 비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리벨리온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신경망처리장치(NPU)를 전문적으로 설계하는 토종 스타트업이다.

최근 시리즈C를 마무리하면서 누적 투자금은 6500억원으로 확대됐다. 약 2조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 기업으로 등극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Arm ▲KT ▲SK텔레콤 ▲사우디 아람코 등이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어 '국내 AI 반도체 대표 주자'란 별명도 얻었다.

박 대표는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시선을 돌린 점'을 꼽았다. 박 대표는 카이스트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공학(CSAIL)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인텔·스페이스X·모건스탠리에서 근무했다. 경력 대부분을 미국 실리콘밸리·월스트리트에서 쌓았음에도 창업은 우리나라에서 했다.

박 대표는 "11년을 미국에서 생활한 터라 삼성·SK도 몰랐고, 초기 투자도 미국인이 해줬는데 한국에서 창업을 결정했다"며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 합류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리벨리온이 AI 반도체 스타트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삼성·SK 기반의 '맨파워' 덕분"이라며 "미국에서 창업을 했다면 '눈에 띄지 않는' 그저 그런 기업에 머물렀을 것"이라고 했다.

리벨리온 박성현 대표(가운데)와 마샬 초이 최고사업책임자(CBO·왼쪽), 신성규 최고재무책임자(CFO)가 1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사옥에서 열린 설립 5주년 기념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질의응답을 진행하고 있다./리벨리온

박 대표는 창업 후 지금까지 올린 성과로 ▲글로벌 투자자와 통신·반도체 설계 및 제조 영역 핵심 기업들의 전략적 투자 유치 ▲1세대 NPU 아톰(ATOM) 양산 ▲아톰 기반의 대규모 AI 서비스 상용화 ▲SK 사피온코리아와의 합병 ▲빅칩 '리벨쿼드' 개발 후 글로벌과 기업 기술 검증(PoC) 진행 등을 꼽았다. 박 대표는 "지난 5년은 글로벌 AI 인프라 시장이 어떤 기업을 차세대 NPU 파트너로 인정할지 가늠하던 시기"라며 "리벨리온은 그 과정에서 선택받은 기업"이라고 말했다.

리벨리온이 개발한 반도체는 AI의 다양한 영역 중에서도 특히 '추론'에 특화돼 있다. 그동안 글로벌 빅테크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사용해 AI를 '학습'하는 과정에 집중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AI 서비스가 상용 단계에 접어들면서 실제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추론' 기능이 중요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GPU보다 효율적인 NPU를 사용해 서비스 비용을 낮추려는 시도가 이뤄지는 추세다. 리벨쿼드는 '지연 시간'이나 '연산' 등 추론 영역에서 중요한 성능에서 엔비디아 플래그십 GPU와 비슷한 성능을 낸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박 대표가 AI 학습·추론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엔비디아를 경쟁사로 꼽은 이유다. 추론 분야에서 엔비디아가 차지하고 있는 시장의 일부를 가져와 성과를 내겠다는 포부다. 박 대표는 "향후 5년 비(非)엔비디아 중심의 새로운 AI 인프라 체계가 형성되는 시기가 될 것"이라며 "리벨리온은 이 흐름을 주도하는 선봉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AI 추론 영역에서 경쟁사 대비 가진 강점으로 '실제 서비스 구동 경험'을 꼽았다. 리벨리온이 2023년 삼성전자 5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을 기반으로 개발한 NPU '아톰'은 현재 SK텔레콤의 AI 서비스 '에이닷' 중 통화 녹음 기능을 구동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KT클라우드도 아톰을 탑재한 국내 최초의 NPU 기반 데이터센터를 상용화한 바 있다. 박 대표는 "실제로 앤드 유저 시스템에 제품이 적용됐다는 건 AI 스타트업으로선 극히 드문 사례라 사업 확장에 좋은 레퍼런스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12월 SK텔레콤의 AI 반도체 자회사인 '사피온코리아'와의 합병 역시 사업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 대표는 "합병 후 SK하이닉스가 리벨리온 주주로 이름을 올리게 됐는데, 이 역시 세계 시장에서 우리 사업을 설명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며 "합병에 따른 '맨파워' 확대 역시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마샬 초이 리벨리온 최고사업책임자(CBO)가 16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사옥에서 열린 설립 5주년 기념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발표하고 있다./리벨리온

리벨리온은 창업 후 5년간 국내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세계 시장 진출을 노리고 있다. 마샬 초이 리벨리온 최고사업책임자(CBO)는 "미국·일본·중동·동남아 등 주요 지역의 정부와 기업들이 AI 인프라 다변화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며 "리벨리온은 기술력과 제품 완성도를 모두 갖춘 기업으로, 엔비디아 외 기업에서 대안을 찾는 글로벌 고객사에 가장 경쟁력 있는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벨리온이 시장이 명확해지는 시점에 가장 효율적이고 준비된 제품을 제시할 수 있는 회사"라고 했다.

박 대표는 "AI 인프라는 단기 성과로 판단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며, 장기적인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생태계를 구축하고 그 일원으로서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며 "리벨쿼드를 기반으로 한 칩렛 제품 개발과 글로벌 협력은 리벨리온이 지속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핵심 기반이고, 이러한 연합 전선 구축 과정에서 국가 차원의 역할도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벨리온의 1보 전진은 대한민국의 1보 전진이라는 책임감으로 글로벌 AI 인프라의 핵심 플레이어로 거듭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