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오픈AI, 구글 등 주요 인공지능(AI) 기업들이 신흥국을 중심으로 월 구독료 5달러(약 6300원) 안팎의 저가 요금제를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월 20달러(약 2만8000원)인 일반 요금제의 4분의 1 수준이다. 전 세계적으로 사용자 기반을 넓혀 수익성을 확보하고, 신흥국에서 AI 사업을 공격적으로 키우고 있는 중국 경쟁사를 견제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챗GPT 개발사 오픈AI는 지난 8월 인도 시장에서 출시했던 월 4.57달러(399루피·약 6300원)의 저가 요금제 '챗GPT 고'를 최근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네팔, 파키스탄, 필리핀, 세네갈, 우즈베키스탄, 르완다, 볼리비아, 소말리아, 탄자니아 등 82개국으로 확대했다. 인도 시장에 저가 요금제를 도입한 이후 유료 가입자 수가 2배로 늘자, 주요 신흥국에도 곧바로 도입한 것이다.

저가 요금제는 인구가 많고 소득 수준이 높지 않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남아메리카 지역 국가에 우선 적용된다.

오픈AI는 자사 블로그를 통해 "'챗GPT 고'는 저렴한 가격으로 챗GPT의 주요 기능을 이용할 수 있는 요금제"라며 "향후 점진적으로 모든 국가에 해당 요금제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챗GPT 고'는 챗GPT 무료 버전 대비 응답 처리 한도, 이미지 생성 횟수, 파일 업로드 횟수, 데이터 분석 횟수 등이 더 높고 메모리 용량도 2배 많다.

AI 업계에서는 오픈AI가 성장 잠재력이 높은 신흥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가성비 요금제'를 내놓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선진국 대비 소득 수준이 낮은 신흥국에서는 비용 부담 때문에 챗GPT 유료 구독자가 좀처럼 늘지 않자, 구독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5달러짜리 요금제를 출시한 것이다. 글로벌 AI 경쟁이 치열해지는 환경에서 빠르게 유료 구독자를 확보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구독자를 플랫폼에 묶어두는 락인(lock-in)을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실제 '챗GPT 고' 출시 이후 인도 사용자가 증가하자, 챗GPT 주간 활성 사용자도 8월 기준 7억명에서 지난달 8억명까지 늘었다.

IT매체 테크크런치는 "오픈AI는 기업가치가 5000억달러(약 700조원)에 육박하지만, AI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어 여전히 적자를 기록 중이다"라며 "이에 '챗GPT 고'와 같은 저가 요금제를 통해 수익성을 확보하고, AI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아시아 지역에서 글로벌 사용자 기반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라고 전했다.

월 구독료 5달러 미만의 '챗GPT 고' 요금제./오픈AI 제공

오픈AI의 신흥국 시장 공략은 최근 비슷한 전략으로 AI 모델 제미나이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구글의 행보를 의식한 움직임으로도 풀이된다. 앞서 구글은 지난 9월 인도네시아에서 구독료 월 5달러 수준의 '구글 AI 플러스' 요금제를 선보인 뒤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이집트, 가나, 멕시코, 라오스, 네팔, 나이지리아, 예멘 등 40여개국으로 확대했다. '구글 AI 플러스'는 최고 성능의 '제미나이 2.5 프로' 모델, '나노 바나나'를 포함한 이미지 생성 기능, 동영상 생성 기능 '비오3 패스트' 등의 사용 한도가 무료 버전 대비 많고 200GB(기가바이트) 용량의 클라우드 저장소 등을 제공한다.

'오픈AI 대항마'로 불리는 앤트로픽도 지난 15일(현지시각) 저렴한 소형 AI 모델 '클로드 하이쿠 4.5'를 출시하면서 구독자 확보 경쟁에 가세했다. 업계에서는 조만간 퍼플렉시티, xAI 등 주요 경쟁사들도 저가 요금제를 선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시장·용도별로 요금제를 세분화하면서 구독료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AI 기업들은 수익성 확보 전략의 일환으로 AI 사용량이 많은 개인과 기업 구독자를 대상으로 고성능 고가 요금제를 잇따라 선보였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AI 기업 xAI는 월 300달러(월 42만원)에 달하는 '슈퍼그록 헤비' 요금제를 출시했고, 퍼플렉시티도 월 200달러(약 27만원)짜리 초고가 요금제 '퍼플렉시티 맥스'를 공개했다. 오픈AI와 앤트로픽, 구글도 헤비 유저(열성 사용자)를 위한 월 200만원대 요금제를 운영 중이다.

오픈AI처럼 아직 AI 사업에서 적자를 내고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AI 사용량이 많은 헤비 유저는 물론, 신흥국 잠재 고객을 끌어들여 글로벌 사용자 기반을 확보해야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저가부터 초고가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요금제 세분화 전략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중국 AI 기업들이 신흥국 내 일반 사용자와 코딩 시장에서 입지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어,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저가 요금제를 적용하는 국가를 확대한 것으로 분석된다. 딥시크, 즈푸AI, 알리바바 등 주요 기업들은 중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중동, 남미 등 신흥국에서 정부 AI 공급 계약을 따내고,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일반 사용자와 개발자 확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앞서 오픈AI는 중국 정부의 지지를 받으며 세를 확장하고 있는 즈푸AI를 견제 대상으로 지목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