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알뜰폰 업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올해부터 알뜰폰 업체에 전파사용료가 부과되고,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의무화 등 비용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4월부터 이동통신 3사와의 망 사용 도매대가 협상 주체가 정부에서 협상력이 떨어지는 개별 알뜰폰 업체로 변경돼, 요금 경쟁력을 갖추기가 더욱 어렵게 됐다. 이통 3사의 보조금 지원을 제한하는 단통법(이동통신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폐지 역시 보조금 지원 여력이 큰 이통 3사로 알뜰폰 가입자의 이탈을 가속화할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 4월부터 망 사용료 ‘사후 규제’... 알뜰폰 요금 경쟁력 상실 위기
10일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에 따르면 작년 알뜰폰에서 이통 3사로의 이탈 가입 건수는 63만2119건으로 전년 대비 45.4% 늘었다. 이통 3사에서 알뜰폰으로 번호이동 순증 수는 37만7432건으로 2023년(80만896건)과 비교하면 약 53% 감소했다. 번호이동 순증 수는 이통 3사로부터 알뜰폰에 유입된 고객 수에서 이통 3사로 이탈한 고객을 제외한 수치다.
알뜰폰 가입자가 이통 3사로 이탈하고 있는 데다, 업황이 좀처럼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자 사업 철수를 선언하는 알뜰폰 업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작년 12월 세종텔레콤이 알뜰폰 사업 철수를 선언했고, 이달 초 여유모바일이 알뜰폰 사업 종료를 공식 발표했다.
알뜰폰업계는 이통 3사와의 망사용 도매대가 인하 협상이 2년 넘게 지연되면서 더 낮은 가격의 요금제를 내놓기가 어려워져 알뜰폰 시장이 성장 정체에 빠졌다고 하소연한다. 알뜰폰업계 관계자는 “알뜰폰은 4G(4세대 이동통신)망 사용 중심으로 운용되는데, 이미 5G 중심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는 이통 3사가 4G망 사용 가격 인하 협상을 2022년 이후 지금까지 미루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4월 이후 망 사용 도매대가 협상 방식이 사전 규제에서 사후 규제로 바뀌는데, 4월이 지나면 망 사용 도매대가 인하는 물 건너간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전 규제는 과기정통부가 알뜰폰 업체를 대신해 이통 3사와 일괄적으로 망 사용 도매대가를 협상하는 방식이다. 반면 사후 규제는 개별 알뜰폰 업체가 이통 3사와 망 사용 도매대가를 협상하고, 그 결과를 사후에 과기정통부가 검토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으로 사전 규제는 올해 3월까지만 유지되고, 4월부터는 사후 규제가 적용된다. 이 때문에 알뜰폰업계는 올해 3월까지는 망 사용 도매대가 인하 협상이 나와야 더 낮은 요금제로 개편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협상력이 낮은 중소 알뜰폰 업체를 대신해 직접 정부가 나서줘야 이통 3사가 망 사용 도매대가 인하에 합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전파사용료⋅ISMS 인증 부담 가중… 단통법 폐지까지 악재 이어져
올해부터 중소 알뜰폰 업체에 부과되는 전파사용료(국가 자원인 전파를 사용하는 대가로 부과되는 관리세)도 요금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올해부터 전파사용료의 20%를, 2026년에는 전파사용료의 50%를, 2027년부터는 전액을 납부해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2027년부터 알뜰폰 가입 회선당 약 2000원의 추가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 지금까지는 이통 3사 자회사 알뜰폰 업체를 제외한 중소 알뜰폰 업체들의 전파사용료를 정부가 면제해줬다.
올해 8월까지 알뜰폰 업체들이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을 의무적으로 구축해야 하는 것도 중소 알뜰폰 사업자들에겐 부담이 된다. ISMS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인증하는 종합 관리체계로 사이버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보호 조치 기준이다. ISMS 구축에는 약 2억원의 초기 비용이 들고, 3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인증 수수료가 900만~15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통법 폐지로 오는 7월부터 지원금 제한이 풀리지만, 이통 3사간 가입자 유치 경쟁보다는 알뜰폰 가입자를 뺏어오는 쪽으로 자금이 집중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단통법이 폐지가 되면 이통 3사의 보조금 재원이 알뜰폰 가입자를 데려오는 쪽으로 집중될 것이란 이야기가 내부적으로 돌고 있다”며 “이통 3사 가입자를 서로 뺏어오는 경쟁보다는 알뜰폰 업계 쪽 가입자를 유치하는 방향으로 암묵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다”고 했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이통 3사의 통신망에 의존하고 있는 알뜰폰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요금 경쟁력을 높이기도 어려운 데다, 전파사용료와 ISMS 인증 비용 등 알뜰폰 요금을 인상시키는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지금 알뜰폰업계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고 했다. 안 교수는 또 “지난해 전환지원금 제도 시행과 이통 3사의 저가요금제 출시 등은 정부 정책으로 시작된 건데, 알뜰폰 가입자의 이탈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며 “엇박자를 내는 정부 정책도 문제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