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달리

이달 초 미 육군 병사가 미국 최대 통신사인 AT&T와 버라이즌의 시스템을 손상시킨 해킹 활동에 연루된 혐의로 체포됐다. 해당 병사는 지난해 10월 클라우드 업체인 스노우플레이크의 플랫폼을 통해 AT&T와 버라이즌의 망에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500억개 분량의 AT&T 가입자의 글, 통화 기록이 유출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해커 그룹 ‘솔트 타이푼(Salt Typhoon)’이 미국 통신사 티모바일(T-Mobile)의 네트워크를 대상으로 해킹 활동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미국 고위 정보기관 요원들의 무선통신을 도청하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미국 통신사를 대상으로 한 해킹 공격이 속출하면서 노키아, 에릭슨, 삼성전자가 네트워크 보안을 강화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네트워크 망에 이중 암호화를 적용하거나 보안을 강화한 별도 네트워크 망을 마련하는 등 관련 기술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미국은 중국, 인도에 이은 세계 3위 이동통신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 화웨이 등의 시장 진입을 배제하고 있어 노키아, 에릭슨,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중요 시장이다.

◇ 망 이중 암호화부터 해킹 대회까지

9일 업계에 따르면 노키아는 이달 초 통신 사업자들이 가상화폐를 비롯한 디지털 자산을 안전하게 암호화할 수 있는 기술 특허를 공개했다. 신호를 송·수신하는 2개의 장비에 일반적인 암호화 방식과 개인 사용자에게만 부여되는 특수 암호를 함께 부여해 보안 수준을 높인 기술이다. 일본 NTT도코모, 스페인 텔레포니카 등 글로벌 이동통신사들이 최근 블록체인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에릭슨은 지난달 미국 전기 업체와 협업해 현지 농촌 지역에 LTE(4세대 이동통신) 네트워크 장비를 설치했다. 농촌 지역에 네트워크 망을 여분으로 설치해 높은 보안 수준이 요구되는 중요 정보를 기존 망에서 분리해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다. 악천후 등의 문제로 기존 망에 문제가 생겼을 때 신속하게 시스템을 복구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100만달러(약 14억원)의 상금을 걸고 모바일 네트워크 해킹 대회를 개최했다. 네트워크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공격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해커들이 장치의 잠금을 해제하거나 임의로 프로그램을 설치해 데이터를 추출하게 유도한 뒤 네트워크 취약점을 발견하는 프로그램이다. 삼성전자는 프로그램을 통해 발견된 취약점을 분석해 네트워크 보안을 강화할 방침이다.

◇ “美서 해킹 시도 늘 것… 노키아·에릭슨·삼성, 보안 기술로 경쟁력 확보”

노키아, 에릭슨, 삼성전자는 다양한 통신 보안 기술로 미국 통신사를 고객사로 공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중국 통신장비를 배제하는 미국 시장에서 비교적 쉽게 매출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에릭슨은 북미 통신장비 시장에서 66.5% 점유율로 선두를 유지했고 노키아는 18.7%로 2위, 삼성전자는 10.9%로 3위를 기록했다. 3개 사업자 이외에는 뚜렷한 점유율을 가져간 기업이 없다.

시장조사업체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랜섬웨어 등 사이버 공격으로 인해 글로벌 기업 1곳의 평균 손실 규모가 2023년 초 20만달러에서 지난해 6월 기준 150만달러까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의 발전으로 기업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 수준이 점차 고도화하고, 가상화폐 등 디지털 자산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신영웅 우송대 정보보안학과 교수는 “최근 미국 정권 교체기를 틈타 동향을 파악하려는 적대국의 해킹 시도가 활발해지고 있다”며 “많은 개인정보를 보유한 통신사가 표적이 될 수밖에 없는 만큼, 통신장비사도 경쟁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보안 기술을 개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