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오는 7일(현지시각) 개막하는 세계 최대 IT(정보기술) 전시회 ‘CES 2025’ 출품작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분야별 혁신 기술을 대표하는 ‘최고 혁신상’을 휩쓸었다. CES를 주관하는 미 소비자기술협회(CTA)는 매년 각 기술 부문별 출품작 중 가장 혁신적인 소비자 기술 제품에 최고 혁신상을 수여한다. 3일 기준 현재까지 공식 발표된 CES 2025 최고 혁신상 19개 중 한국 제품은 7개를 차지해 1위를 달리고 있다.
CTA에 따르면 올해 혁신상 출품작은 전년 대비 13% 증가한 3400개에 달했다. 혁신상은 작년 4월부터 올 4월 이전까지 시장에 출시되는 제품을 대상으로, 산업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기술성과 디자인·혁신성·사회적 기여도를 기준으로 심사한다. 그중 각 기술 부문에서 최고 점수를 받은 제품 일부가 최고 혁신상에 오른다. 현재까지 발표된 혁신상 수상 기업 292곳 중 44%인 129곳이 한국 기업이며, 최고 혁신상은 한국 7개, 일본 4개, 미국 3개, 독일·캐나다·오스트리아·스위스·영국 각 1개 순이다. CTA는 오는 5일 혁신상과 최고 혁신상 제품을 추가로 발표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들은 올해 CES의 핵심 키워드인 인공지능(AI)을 비롯해 디지털 헬스, 사이버보안, 핀테크, 드론 등의 부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CTA는 매년 기술 트렌드에 맞춰 기술 카테고리를 지정하는데, 지난해 AI 부문이 신설된 데 이어 올해는 산업 장비·기계, 패션 기술, 뷰티 및 개인 관리, 반려동물 기술·동물 복지 등 4개 부문이 새로 추가됐다. 게리 샤피로 CTA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총 33개 기술 부문에서 혁신상에 오른 제품은 기술 혁신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며 전 세계의 큰 과제들을 해결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작년보다 출품작이 약 50% 급증한 AI 부문에서 최고 혁신상을 받은 제품은 웅진씽크빅의 AI 기반 독서 플랫폼 ‘북스토리(Booxtory)’다. 이 제품은 생성형 AI 기술을 적용해 전 세계 모든 책을 원하는 언어로 읽어준다. 읽기를 어려워하는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이 책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개발됐다. 휴대전화나 태블릿PC에 책을 실시간으로 디지털화한 뒤 사용자가 원하는 독서 모드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가령 어린이를 위해서는 시각적 효과와 다양한 소리를 더하거나, 부모나 성우 목소리로 책을 읽어준다. 독서가 어려운 성인을 위해서는 ‘쉬운 읽기 모드’를 제공해 청자가 원하는 여러 방법으로 활자를 읽어준다.
새로운 CES 트렌드로 주목받고 있는 디지털 헬스 부문에서는 한양대 게임연구실에서 출품한 이명 치료 장치가 최고 혁신상을 받았다. 한양대 대학원 휴먼컴퓨터인터랙션학과 게임연구실이 개발한 ‘TD 스퀘어’는 가상현실(VR) 기술과 청각·시각·촉각 등의 감각을 결합해 이명을 치료하는 디지털 제품이다. 이 기기는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해 환자 개인에게 맞춘 입체적인 이명 음향 ‘아바타’를 만들어내고, 환자는 이 가상의 아바타를 직접 조작하면서 치료를 진행한다. 이명을 겪는 환자가 자신의 이명 소리가 마치 귀 밖에서 들리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가상현실 환경을 먼저 만든 다음, 환자가 자신이 느끼는 이명 아바타를 직접 조작하고 통제하면서 이명 증상을 완화하는 방식이다. 올해 최고 혁신상 중 유일한 대학 연구소 제품이다. 김기범 한양대 교수는 “이 제품은 게임연구실 대학원생들의 협업으로 지난 5년에 걸쳐 개발된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사이버보안 부문에서는 SK텔레콤의 AI 기반 모바일 금융사기 탐지·방지 기술 ‘스캠뱅가드’가 최고 혁신상을 받았다. 스캠뱅가드는 모바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위협을 탐지하고 대응하기 위해 AI 기반의 사이버 위협 정보를 제공하는 기술이다. 주요 기능으로는 딥러닝 구조 기반 미끼 문자 탐지·알림, AI 봇 기반 소셜미디어(SNS) 사기 방지, 머신러닝 기반 사기전화 패턴 탐지 식별 등으로, 지난해 월평균 약 130만건의 금융사기 의심 메시지·통화를 차단하는 성과를 냈다.
헤드폰·개인 오디오 부문에서는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무선 이어폰 ‘갤럭시 버즈3 프로’가 최고 혁신상을 받았다. 이 제품은 AI 기반 오디오 번역 도구를 통해 실시간 번역 기능을 제공한다. 이어폰이 언어를 자동으로 감지해 번역된 내용을 음성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사용자가 화면을 보지 않고도 언어 장벽 없이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임베디드(내장형) 기술 부문에서도 국내 지문·얼굴인식 기술 기업 슈프리마AI가 세계 최초로 금융 범죄 예방을 위한 온디바이스 AI 모듈을 개발해 최고 혁신상에 올랐다.
드론, 핀테크 부문에서는 국내 스타트업 제품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ATM 같은 독립형 기기에서 작동하는 이 제품은 안면 인식과 행동 분석을 통해 금융 범죄를 실시간으로 예방한다. 드론 기술 스타트업 니어스랩은 경찰 운영 시스템과 완벽히 통합돼 실시간으로 끊김없이 임무를 수행하게 만든 드론 스테이션으로 최고 혁신상을 받았다. 핀테크 스타트업 고스트패스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지문, 얼굴 등 개인 생체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사용자 인증과 동시에 결제가 이뤄지게 만든 시스템으로 핀테크 최고 혁신상을 받았다.